The Creative Act (2023), Rick Rubin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달은 건 아니다.
하지만 어느 날, 내 인생에는 예술이 곁에 있어야 한다는 분명한 확신이 들었다.
인간의 본성인지, 내 천성인진 모르겠지만
살아오면서 종종 예술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올라오는 순간들이 있었다.
글, 그림, 음악 등 예술의 어떤 형태이든
내 내면의 생각을 표현하고, 예술로 승화해서
팽창하는 내 소우주를 방치하지 않고 알아주는 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기획'을 사랑하는 천성을 가진 사람이라 그런지
잘 '기획'된 것을 보면 가슴이 뛴다.
그것은 전시회든, 인터뷰집이든, 영화든, 소설이든 무엇이든 될 수 있는데
최근에는 음악 앨범의 기획성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음악으로 묶이고,
앨범 커버와 실물 앨범, 뮤직비디오, 곡 소개글까지 하나의 세계처럼 기획되는 방식이 좋았다.
내가 아티스트이면 내 삶의 이야기도 앨범으로 잘 기획해서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데 나는 그냥 일반인1 이라는 사실이 아쉽다고 일기장에 적은 기억도 난다.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
책 창조적 행위에서도 예술을 삶의 곁에 두는 이야기를 한다.
창작을 기술이나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로 다루며 릭 루빈은 창의성이 특별한 재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얼마나 예민하게 보고·듣고·느끼는가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전부 공감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예술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삶의 태도로 보는 점이 나와 같아 매우 반가웠다.
이 책에 담긴 내용 가운데 사실로 증명된 것은 하나도 없다. 전부 내가 알아차리고 사색한 것들뿐이다. 사실이라기보다는 생각에 가깝다.
그렇기에 공감할 수 있는 생각도 있고 그렇지 않은 생각도 있을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잊고 지냈던 것들, 그것을 일깨워주는 생각들도 있으리라.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이용하고 나머지는 흘려보내라.
이 모든 순간이 진전된 탐구를 위한 초대장이다. 더 깊이 들여다보고, 더 멀리 물러나거라 더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새로운 존재 방식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외부의 세계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지 않다. . . .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창조한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 . . 경험을 큐레이팅한다.
. . .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한 방식이다. 인식의 한 방법이자 주의를 기울이는 하나의 연습이다. 좀 더 미묘한 음을 알아차리기 위해 감각을 연마하는 것이다. 나를 잡아당기고 밀어내는 것을 찾는 것이다. 어떤 감정이 샘솟고 또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특정한 순간에 공명하는 에너지를 끌어당기는 가장 섬세한 안테나를 가진 이가 가장 훌륭한 예술가가 된다. 많은 위대한 예술가가 처음에는 에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예리한 감각을 발달시킨다. 그들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더 아프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모든 것을 남보다 더 강렬하게 느낀다.
. . . 어릴때는 세상의 정보를 받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 방해물이 훨씬 적었다. 그때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이미 굳어진 믿음과 비교하지 않고 기쁘게 받아들였다. 다가오지도 않은 앞일을 걱정하지 않고 현재를 살았따. 일일이 재지 않았고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였다. 세상사에 진력나지 않았고 호기심일 넘쳐서 작고 사소한 경험에도 경이로움을 느꼈다.
처음 접하는 예술 작품이 깊은 차원의 울림을 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익숙한 무언가가 그저 낯선 형태로 돌아온 것이니까.
. . . 우리의 필터는 도착하는 데이터를 무조건 통과시키지 않고 해석함으로써 원천 정보를 줄이려고 한다. 이렇게 재구성된 정보 조각들이 그릇에 채워지면서 이미 그곳에 수집되어 있던 재료들과 관계가 형성된다. 그 관계는 믿음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자신이 누구인지, 주변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본질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합쳐져서 그 사람의 세계관을 이룬다.
예술은 예술가와 관객 사이에 심오한 연결을 만든다. 그 연결을 통해 양쪽 모두 치유될 수 있다.
. . . 우리는 작품 속에 공통적인 경험에 끌린다. 그 안의 불안전함까지도 포함해서. 자신의 일부를 발견하고 이해받는 기분, 연결됨을 느낀다.
. . . 사람은 각자 세상을 보는 방식이 있다. 그래서 고립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예술에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 우리를 연결시키는 힘이 있다.
. . . 그 연결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분리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가 알게 된 삶의 깨달음을 기념하는 위대한 작업에 참여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어느 형태의 창작이든 예술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선택이 아닌 필연에 의해 그 길을 걷는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할말이 있어서, 자신의 내면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런 의미에서 난 이 세상의 예술인을 모두 존경한다.
앞서 적은듯이 나도 역시 창조적 행위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선택이 아니라 필연으로. 내 첫단계는 글쓰기다. 아직 삶의 초입에 서있기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등 나를 탐구할 시간이 필요하고, 공부를 많이 해왔다는 이유로 느끼는 일시적인 권태 속에서 내가 잘 모르는 예술가의 세계를 쉽게 낭만화하고 뛰어들고 싶지는 않다.
결국 내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건, 내 삶을 차근차근 기록하고 이야기하는 창조적 행위이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서 마슬로의 욕구 이론에 나오는 '자아실현'을 이룰 것이다.
누구나 자아실현의 길을 터놓고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현대사회에서 예술가는 비록 소수에 속하지만, 그 누구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그 누구라도 각자만의 생각과 철학이 있을 것이고 예술을 굳이 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자신의 그 소우주를 어떠한 길로든 표현하는 행위를 삶의 태도로 두는 그 과정이 결국 마슬로가 말한 ‘자아실현’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