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erialists, Celine Song (2025)
00. 앞서
나는 늘 ‘결혼 중매’라는 개념이 신기했다. 결혼은 오랜 사랑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했는데, match maker(중매인)를 통해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사람을 소개받고, ‘결혼 시장’에 던져져 가치가 측정되고, 그 결과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 짝지어지는 구조.. 나에겐 마냥 너무 먼 얘기 같고, '사랑'이라는 것처럼 가장 낙천적이며 가장 예측 불가능한 감정인데, 그것을 이렇게 계산적인 방식으로 재단하고 선택하는 행위 자체가 충돌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동시에 결혼이라는 게 한 사람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무게를 생각하면, 당연히 조건이 붙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이해는 갔다.
그래서 Materialists가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해서 보고 싶었다.
01. MATERIALISTS
주인공 루시는 뉴욕의 match maker이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조건들을 세세하게 분해하고, 그 조건에 가장 어울리는 상대를 찾아주는 사람으로, 상담과 피드백을 반복하면서 마치 투자 자문사처럼 사랑을 설계한다.
Lucy가 성공시킨 한 커플의 결혼식에서 두 남자가 등장한다.
Harry. 그는 Lucy가 결혼에 성공시킨 재산가 신랑의 형제이다.
결혼식장에서 Lucy가 match maker 시장에 대해 하는 말을 듣고 Lucy와 대화하기 시작한다.
John. 그는 Lucy와 5년 동안 사귀었던 전 애인이다. Lucy가 좋아하는 음료를 서빙하며 등장하는 그는 Lucy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고, 신인 배우라는 직업이 불확실해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이다.
영화 전반부는 현대 사회의 데이트와 결혼이 가진 여러 측면을 드러내는 장면들로 채워진다.
그 속에서 Lucy는 이미 이 세계의 규칙에 너무 익숙해진, 그래서 모든 걸 투명하게 꿰뚫어 보는 인물로 묘사된다.
내가 특히 인상 깊게 본 전반부의 장면들은 다음과 같다:
1. 결혼식 당일에 결혼하는 이유가 자기 여동생이 질투해서라고 고백하는 장면. 여동생이 자신의 애인이 더 잘생겼고 돈을 많이 벌어서 질투를 느끼고 그것을 알기에 자기가 '이긴' 느낌이라고 신부는 고백한다. 영화에서 상업화된 연애와 결혼을 보여주며 계속 묻는 건 where is the love? 이 아닐까 싶다. 울며 고백하는 신부에게 Lucy는 익숙하게, '그가 신부님을 더 가치 있게 느끼게 해 주네요.'라고 능숙하게 포장하며 신부를 위로 아닌 설득하여 성공적인 결혼에 큰 기여를 한다.
2. 중간중간 보여준 match maker 상담 클립들. 영화 속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중간중간 삽입되는 match maker 상담 장면들이었다. 짧은 대화 클립으로 구성된 이 장면들은, 연애와 결혼이 얼마나 계산적인 시스템 안에서 굴러가고 있는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Celine Song 본인도 영화감독이 되기 전, 실제로 뉴욕에서 약 반년 동안 match maker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녀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밝히길, 상담은 취미나 성격, 가치관 같은 낭만적인 대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훨씬 수학적인 방식이었다. 남성들은 늘 “fit”을 원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운동을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라 “BMI 20, 저체중 바로 위” 정도의 체형을 요구하는 말이었다. 여성들은 “키 6피트”를 거의 필수 조건처럼 내걸었다. Song은 이런 요구들을 들으며 “그 사람이 90살쯤 되면 결국 170cm가 될 텐데, 결혼의 목적이 함께 늙어가는 거라면 이런 숫자들은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농담처럼 회상한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속 Lucy가 “match maker로 일하는 게 어떻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것을 시체 안치소나 보험 회사에서 일하는 것과 같다고 답하는 장면은 이상하지 않다.
3. 결혼식장에서의 대화#2: 사랑(love)과 연애(dating)의 차이점에 대해 Lucy는: Dating takes a lot of effort, a lot of trials and error, a ton of risk, and pain. (...) Love is easy." 개인적으로 이게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이 대사가 개인적으로 영화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연애는 계산적이지만 사랑은 자기도 모르게 삶에 걸어 들어오는, 거부할 수 없는 것.
Lucy는 matchmaker로서 수많은 고객을 만나봤고 사람들이 데이트에서 뭘 원하는지, 어떤 걸 선호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연애 앞에서 pro/con을 따지며 계산하는 게 일상이다. 그런 Lucy에게 John은 시장 밖의 사람이라고 느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치 Celien Song 감독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뛰어난 예술가 친구들 대부분은 그 mathc maker의 quantified standard에 맞지 않았다고 밝혔듯이.
4. Harry와 연인이 된 순간: 이 연애/결혼 바닥에서 누구보다 전문가처럼 보이는 Lucy가 결국 Harry와 연인이 되기로 결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인간이 왜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는지에 대한 어떤 본질적인 이유가 밝혀진 것 같다.
5. 몇 년 전 John과 헤어지는 걸 회상하는 장면: 5주년 기념을 위해 평소보다 더 고급진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한 그들은 뉴욕 도시 한복판에서 말다툼을 벌인다. John은 주차비가 한 시간에 얼마인지 확인하며 너무 비싸다며 망설이고, 더 싼 곳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Lucy는 예약 시간이 지나면 벌금을 더 내야 한다며 빨리 주차하라고 재촉한다. 연애 5주년 날에 25달러 때문에 싸우는 자신이 싫었던 Lucy는 차에서 나온 뒤 이렇게 말한다: "나도 내가 5주년 기념일에 어디서, 어떤 밥을 먹든 상관없었으면 좋겠어. 근데 난 신경 써. 너도 내가 싫겠지만 나는 더 내가 싫어. 그리고 그건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우리가 돈이 없어서야."
이후 Harry와의 데이트에서 Harry가 부모님이 돈 가지고 별로 안 싸웠다는 말, 거리 한복판에서 싸우는 커플이 이해 안 된다는 말, 아무 기념일이 아닌데도 좋은 식당에 데리고 오는 장면에서 John과 Harry는 정확하게 대조된다. 이 부분에서 경제적 풍족함이 곧 관계의 여유와 안정으로 이어지는 그 직결성에 마음이 아팠다.
Lucy가 Sophie 사건 이후 맞닥뜨린 혼란은 영화의 전환점이다.
그 사건을 시작으로, Lucy는 dating에 대한 자신의 이분법적인ㅡ사랑과 가치를 수량화하는ㅡ사고를 바꾸게 된다.
그녀는 Harry와 결혼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영화의 주제를 응축한다.
Lucy가 결혼을 “business deal”이라 부르면서도, 그 안에 반드시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할 때, 그녀는 단순히 “사랑은 순수한가, 조건적인가”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려 한다. 결혼이 사회적 계약이자 시장적 교환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사랑이라는 불가측성이 빠져버린다면, 그 관계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믿으며.
동일한 날에 Lucy는 Harry의 다리에 있는 흉터를 발견하고 Harry가 키가 커지는 성형수술을 했다는 걸 알게 된다. Harry가 다 털어놓으면서 수술 후 공항, 카페 등에서 달라진 대우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을 통해서 영화는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한다. 대화 후 Harry는 Lucy에게 자신이 아직도 유니콘이냐고 묻고, Lucy는 그를 다시 결혼 시장의 가치 측정에 올려놓는 대신, 당신은 완벽하다고 답한다.
그러고 Lucy는 후에 John과 결혼한다.
When I see your face, I see wrinkles, grey hair, and children that look like you. I can't help it. But as your friend, I would tell you it's a bad idea to be with a 37-year-old catered waiter who still has roommates. I'll tell you, you definitely shouldn't marry a guy that has $2,000 in his bank account in a city he can't afford, who's only still there to keep trying to be a theater actor because someone told him he was good at it once.
-John to Lucy
02. CELINE SONG
Materialists는 감독 Celien Song의 두 번째 영화이자, 데뷔작 Past Lives 이후 내놓은 후속작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정말 신기하게도 Past Lives를 봤을 때랑 너무 똑같은 깊이와 길이의 여운이 남았다.
내가 Celien Song이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방식을 좋아하나 보다.
But I do think that there is something very romantic about the idea of watching each other age, of being buried somewhere and next to something. That’s so material!
-Celine Song, in the interview with Kyle Buchanan
영화 후에 Celine Song 인터뷰를 여러 개 찾아 읽었는데, 그녀가 탐구하려는 사랑의 결 역시 내가 평소 생각하던 것과 닮아 있어 많이 공감됐다. 단순히 ‘사랑은 아름답다’는 식의 진부한 말이 아니라, 사랑이 인간의 선택과 조건, 상황과 얽히면서 어떻게 변주되는지 계속 질문을 던진다.
그녀의 다음 작품도 궁금하다.. 근데 2년 기다려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