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처럼
나는 아름다운 걸 좋아한다.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풍경, 아름다운 디자인, 아름다운 문장.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주 쓰이지만,
그 감정만큼은 결코 진부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예쁜 컵에 담긴 커피가 더 맛있게 느껴지고, 예쁜 인터페이스의 앱을 쓰면 기분이 좋아진다.
'예쁘다', '아름답다'라는 한 마디에는 충분한 감정이 실려있다.
살면서 예쁜 것에 끌리는 감정이 단순한 취향을 넘어서, 나를 구별짓는 아이덴티티이자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동력이라는 걸 느낀다. 그래서 오늘은 '아름다움'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나의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1. 예쁜 걸 좋아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예전의 나는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어색했다.
마치 깊은 통찰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너무 본능적인 사람으로 보일까 봐, 좀 더 있어 보이는 이유를 붙이고 싶었다.
"배우 OO는 연기도 잘하고 개인만의 특색 있는 외모가 매력적이라"
"이 캐릭터는 스킬샷이 매우 간편하고, 변수를 만들기 쉬워서"
이런저런 사족을 붙였지만, 속마음은 사실 늘 같았다.
그냥, 예뻐서
그 예쁨에 먼저 이끌렸고, 그 예쁨은 이후 내가 알지 못했던 대상의 장점들을 찾아볼 수 있는 관심을 이끌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름다움을 토대로 좋아하게 된 대상에 대해서는 그냥 예뻐서 좋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내게 되었다. 예쁜 걸 좋아한다고 해서 그 감정이 얕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쁨을 느끼는 감각은 결국 개인이 느낀 깊은 감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 인공지능 시대, 아름다움만큼은 아직 인간의 영역이다.
요즘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솔직히 무서울 정도다.
작년이나 재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인공지능이 개발자를 대체 하는 건 아직 먼 미래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개발자를 보완해 주는 수단에 멈출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그런 생각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바이브 코딩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단순한 자동완성을 넘어, 프로젝트 전반의 문맥을 기반으로 생각의 흐름과 분위기까지 읽는 도구들이 등장했다. 물론 아직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아키텍처나 보다 나은 구조에 대해서는 개발자가 몇 수 위지만, 지금까지의 발전속도를 보았을 때 머지않아 따라 잡히지 않을까라는 무서움이 들었고, 미래를 위해서는 개발자라는 직업을 넘어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도 옛날에 사놓고 몇 페이지 읽지 않았던 책이다. 별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중간중간에 뭔가 찌릿한 감정이 오는 그림들이 있었다. 특히 모네의 그림이 나의 취향과 잘 맞았다. 찌릿함을 느낀 순간, 개인마다 찌릿함을 느끼는 곳은 다르겠지만, 이 찌릿함을 온전히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재의 LLM 기술로도 개개인을 통계적으로 분석한다면 개인의 취향을 어느정도 수치화하여 취향에 맞는 그림을 추천해 줄 수 있다. 그러나 통계를 기반한 이런 추천은 아직 이러한 수준에는 오직 못했고, 꽤 긴 시간이 필요할거라고 생각이든다. 왜냐하면 이 이상한 찌릿함은 인간과 같은 생명체만이 온전하게 가질 수 있는 흔들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3. 아름다운 걸 만들고 싶다.
아름다운 이라는 찌릿함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아름다운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퇴사하고 소설책 읽고, 영어공부하고, OTT에서 수많은 시리즈물을 정주행 하고 그냥 끌리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가서 1박을 하는 등 잉여로운(?), 혹은 여유로운(?) 로운 삶을 보내고 있지만, 이후에 다시 개발자로서의 업을 이어나가더라도, 그 일이 몇 년이 지속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먼 미래의 나는 지금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다. 그게 디자인이든, 글이든, 광고 기획이든 혹은 전혀 다른 형태의 무엇이 될지 모른다.
그건 아주 짧은 문장일 수도 있고, 웹 사이트의 작은 인터페이스일 수도 있다. 최근에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였나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한 유튜브의 영상을 보던 중 곱씹어 생각해 볼만한 말을 들었다.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말이었다. 기능은 낡고 기술은 바뀌어도, 아름다운 건 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나도, 지금은 작고 사소할지 몰라도 내가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싶다.
4. 아름다워지고 싶다.
예쁜 것들을 보고,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다 보니. 어느 순간, 나 자신도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외모를 넘어, 사람 자체에서 풍기는 향 같은 것? 그런 분위기와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외모는 비교적 명확하다. 관리 방법도, 기준도 어느 정도 보인다. 하지만 분위기, 취향, 말투, 마인드와 같이 사람의 '결'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쉽게 가질 수 없는 것 같다. 사실 방법도 잘 모르겠다. 그건 시간이 필요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와 경험이 쌓이면서 서서히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5. 오래 남는 아름다움
최근에, 내장산이라는 산에 다녀왔다. 등산까지는 아니고 좀 긴 산보를 했다. 산 안에있는 내장사라는 절에 가서 스님이 주시는 차도 마셨다. 차의 풍미는 깊었고, 처마의 단청들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냥 그 순간이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내가 느낀 이 기분과 비슷한 기분을 누군가, 과거에도 미래에도, 느꼈을 것이고 느낄 것이다.
기술이 바뀌고, 유행은 지나가고 지금의 기준은 낡은 것을 취급되겠지만 아름다움 만큼은 그 가치를 잃지 않을 것 같다. 수백 년은 너무 멀고, 몇 년, 몇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느낄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싶다. 그리고 나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6. 매혹
참고로 내가 "예뻐서 좋아하게 된" 게임 캐릭터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아리이다.
특히 그녀의 스킬 중 하나인 매혹(E)은 상대를 멈춰 세우고 자신 쪽으로 이끌어오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