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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일기 2

내가 퇴사한 이유

by 우럭

그렇게 개발자가 되었던, 나는 퇴사를 했다.


회사는 트랜잭션 모니터링 기능을 기반으로 시중은행이나 공기업에 제품을 판매하는, B2B 회사였다. 처음에는 대형 고객사에서 사용하는 제품을 직접 만든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들어본 적 조차 없는 프레임 워크와 자주 접해보지 못한 도메인 지식이 결합된 서비스다 보니, 입사 초기에 업무를 익히고자 퇴근 후에도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했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차츰 일은 편해졌고, 대부분의 직장인처럼 출근, 야근. 그리고 퇴근으로 이루어진 반복되는 일상을 보냈다. 그러던 도중 퇴사일기 0에서 언급한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나와 내가 속한 환경에 대하여 진지하게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고 결국 퇴사라는 선택지를 고르게 되었다.


퇴사를 결심한 이유를 요약하면 현재 업무 분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짐은 물론 현재 팀의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해당 업무를 지속하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자신의 업무와 일치하는 것은 쉽지 않기때문에, 두 사항이 다를 경우 개인적인 성취는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현대사회의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창출한 비즈니스 가치가 자신을 표현하는 평가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 하고 있는 업무가 평소 꿈꿔왔던 분야와 다르다 할지라도, 개발자로서의 실무적 경험이 가치 있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가 속한 환경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2025년의 세계에 살고 있는 프론트엔드 개발자다. 그러나 작년 여름까지 내가 사용한 개발도구는 타입스크립트, vue.js, react.js는 커녕 ext.js라는 일반적인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들어보지도 못했을 프레임워크였다. 사실 소프트웨어 제품의 개발은 프레임워크에 종속되는 게 아니라 상황 및 여건에 맞추어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이러한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프로젝트와 관련 없는 신규 프로젝트조차 자신의 신규학습이 귀찮다는 이유로 ext.js로 작업하는 것을 보이지 않게 강요하여 개발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고집하고, 팀 내 특정 대리님이 올바른 코드 리뷰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PM룰, 리뷰 룰 등을 시범적으로 적용하자는 제안 자체를 삐딱하게 바라보며 비판하는 팀의 분위기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행히 작년 중순 새롭게 시작되는 제품을 리액트 기반으로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나와 pm룰을 제안했던 대리님에게 찾아왔다. 대리님으로부터 도움도 받으며 함께 몇 달간 주말에도 출근하여 공부와 개발을 병행하였다. 최종적으로 단순한 개발 도구의 최신화를 넘어 FSD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제품의 구조 또한 프로젝트에 맞게 설계하였고 성공적으로 제품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팀에는 두 명의 과장님이 계신다. 입사 초부터 두 분에게 뭔가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사람은 모두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맞춰드리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맞춰드렸다. 그러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같이 몇 달간 공부하며 제품을 개발한 대리님이 저 두 과장님에게 00 씨 좀 그만 못살게 굴면 안 될까요?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두 과장 중 한 명이 대리님에게 ㅁㅁ 대리는 사회생활 못하네 이게 내 밥벌이야 이랬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그 두 과장에 대한 분노를 넘어 인간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고, 나는 이러한 감정을 학습의 연료로 삼았다. 학습을 함에 따라 자연스레 개발의 시야가 넓어졌고 이에따라 분노는 더욱 심해졌다. 그 이유는 두 과장님의 개발 실력은 매우 낮은데, 명확한 스펙문서조차 없는 제품을 자신이 6년, 10년 하였기 때문에 잘 알던 것뿐이었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스토리지와 cors의 개념조차 헷갈려하는 것은 물론, 리액트를 따로 공부하고 있다고 말씀 하시지만 번들러가 무엇인지도 모르시고, 나에게 농담 식으로 나중에 리액트 알려줘 하는 말을 들으니, 그동안 나의 힘들었던 시간이 떠오르며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고 그 시기부터 나도 두 과장님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게 되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속으로는 너무 싫어도 겉으로는 참았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후회는 없다.


또한 회사에는 기획팀이 있지만 우리 부서의 경우 기획 팀이 존재하지 않아, 내가 속한 프론트엔드 O팀의 팀장님이 특정 고객사 전용 제품을 직접 기획하셨다. 대리님과 몇 달간 스터디를 하는 동안 팀장님께 적은 횟수라도 스터리에 참여를 부탁드렸다. 리액트의 기본 원리는 아셔야 추후 기능 관련 대화를 할 때 실무자가 말하는 내용을 얼핏이라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몇 달간 진행된 스터디 동안, 팀장님은 단 한 차례 회의실에 오셨으며 5분도 채 있지 않고 떠나신 게 전부였다. 더 나아가 나와 대리님이 작업한 브랜치의 소스코드조차 보지 않으셨다. 기획적인 측면에서 조차 문제가 많았다. 초기 기획의 데이터 구조와 실제 데이터 구조가 조차 완전히 달랐다. 결국 일정을 맞추기 위해 후반에는 만족스럽지 않은 형태로 개발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화룡정점은 QA를 거치며 제품 관련 테스트를 진행 중인 상황에 자신이 직접 기획한 제품이자, 이를 성공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고생한 팀원의 노력에 대한 존중 없이 제품 관련 스레드(대화방)를 나중에 추가 문의 사항 필요하면 초대해 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나가시는 모습을 보고 팀장님에게 큰 실망을 하였다.


시간이 자날수록 환경은 열악해졌고, 결국 같이 고생하며 서로 의지하고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던 고마웠던 대리님도 팀을 떠났다. 나 또한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 팀의 상황은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계속 이 팀에 남아있는 것은 미래를 담보 삼아 현재를 소비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결국 잠시 방황을 하더라도 빠르게 관둔 후, refresh를 조금 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실제로 출근을 하지 않은지 이제 곧 만 3주가 되었고 좀 여기저기 다니며 어느 정도 잘 쉰 것 같다.


다음 주부터는 일주일에 최소 3일 정도는 다른 분과 함께하는 사이드 프로젝트에 시간을 할애할 것 같다. 올해 특히 퇴사 후에 프로그래밍 관련 책과 아티클들을 다수 읽다 보니, 작년에 작업했던 내 코드의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인다. 이번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는 코드레벨에서 미래의 내가 보았을 때 크게 만족스러워 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올해 목표 중 하나가 글을 쓰는 연습을 하는 거라 브런치를 시작했는데, 글쓰는게 너무 어렵다... 비문도 많은것 같고, 하지만 이것도 차츰 하다보면 늘지 않을까?


앞으로 브런치에 퇴사일기외에, 알고리즘 일기장, 개발 생각 노트 등 다양한 글을 많이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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