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인턴으로 시작하는 4번째 직장생활
D-20, D-7, D-3... 드디어 오늘!
내가 이토록 기다려온 날짜는 생일도, 휴가도 아닌 바로 입사 3개월 차가 된 2021년 5월 15일이다. 6개월 인턴십에 절반이 지나간 이 시점을 이토록 기다린 것은 스스로에게 잘 버텼다고 큰 축하를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입사 후 일주일 간의 인수인계가 끝나고 인턴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경력직처럼 바로 실무에 투입되어야 했다. 거기다 처음 해보는 업무와 맥북 사용으로 첫 한 달간은 주말에도 계속 업무에 필요한 자료를 찾고, 관련 서적들을 탐구하며 마케터로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4번째 직장이자 신입 마케터로 발을 내딛기까지의 지난 시간들을 기록해본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글로벌 캐릭터 브랜드 L회사. 이 곳에서 브랜딩을 담당하는 크리에이티브 플래닝팀의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처음엔 아직 대학생인 인턴들 사이에 이십 대 후반으로 공감대를 찾는 게 뭔가 멋쩍기도 하고, 새로운 업무들이 계속 쏟아지는 환경 속에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친구들에게 전화로 찡찡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잘할 거라는 격려와 응원을 받고 이제는 제법 새로운 업무들을 계속 마주하는 데 맷집도 생겼다.
누군가 대학생 때부터 마케팅이 꿈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마케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작년 이 맘때쯤이었다. 나는 그때 남양주에 있는 평화 NGO에서 동북아 평화교육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기획해온 행사와 프로그램, 해외출장들이 줄줄이 연기, 취소되는 상황을 마주하며 직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 나의 상사 케런은 가족들과 안식년을 가지고 고향인 미국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 점에 대해 충분히 입사 전에 상황을 듣고 입사 결정을 했고, 이미 일을 하면서 일본, 중국, 대만, 몽골, 필리핀 등에 있는 중앙위원회와 메일과 스카이프로 업무를 진행해왔던 터라 미국과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이것이 바로 디지털 노마드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밀레니얼 세대라면 아마 한 번쯤은 디지털 노마드로 일하는 것을 동경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록 코로나로 내 몸은 한국에 있지만 노트북 하나로 세계 어디에 있는 사람과도 연결되어 함께 일할 수 있는 경험.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사람을 직접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만,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일도 꽤 좋아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코로나로 취소된 행사들 대신 온라인으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새로운 일을 벌이기에는 리소스적인 한계가 있었고, 그렇다면 다음 방향성을 고민하며 온라인에서 홍보와 마케팅하는 일을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커리어 전환을 마음먹게 된 시작점이었다.
단체의 10주년을 기념하여 일본 피스보트를 타고 참가자들과 함께 항해하고자 했던 프로그램은 온라인 축제로 기획을 변경하게 되었다. 온라인 줌으로 2시간 넘게 진행된 행사는 목표 인원 100명 중 98명의 참가자가 신청해주었고, 당일 전 세계에서 60명 이상 참석하여 성공적으로 함께 10년을 돌아보고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여러 하이라이트 순간들이 있었지만 역시나 제일 좋았던 건 우리가 비록 만날 수 없더라도 같은 취향을 가지고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맡았던 프로젝트들을 잘 완수하고, 회사에선 연장을 원했지만 나는 더 늦기 전에 홍보와 마케팅 쪽에 전문성을 쌓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퇴사를 결정했다. 전 회사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단체였고, 지금도 좋아하기에 올여름 처음 시작해보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기획할 한국 담당자가 필요하다는 연락에 흔쾌히 도와주게 되었다. 본업을 하며 시간을 내는 게 쉽진 않지만 좋아하는 일이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배우는 게 많기 때문에 즐거운 취미생활로 할 수 있는 것 같다.
마케터로 커리어를 시작한 지난 3개월을 돌아보면 역시 내 마음을 따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백수가 된 후 국비 교육을 통해 마케팅을 배웠는데 그동안 비영리 영역에서 배울 수 없던 또 다른 세상을 만난 느낌이었다. 팀 과제의 팀장을 맡아 온라인 시장에 처음 진출하는 탄소매트를 팔기 위해 팀원들과 13시간 동안 스터디 카페에서 마케팅 기획서를 만든 날도 있었다. 이 일에 재미가 없었다면 이렇게 열정을 쏟아붓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팀원들과 다 같이 정말 즐기며 준비했고, 그 결과가 좋은 광고 수치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며 팀워크의 중요성을 느꼈던 의미 있던 프로젝트였다.
학원을 다닐 때는 콘텐츠 마케팅보단 퍼포먼스 마케팅 쪽이 나랑 더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방향으로만 지원서를 넣던 중에 우연히 찾아온 기회에 나는 신선함을 느꼈고, 모험심이 발동해 도전하는 쪽을 선택했다. 내가 자신이 없다 생각했던 콘텐츠 마케팅 업무를 하는 6개월 체험형 인턴직을 선택하기로 말이다. 다른 회사의 정규직 자리도 합격했지만 그곳에 갔다면 나는 지금의 좋은 동료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내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현재는 인턴이지만 실무자로 마케팅의 기획부터 실행까지 다 경험해보고 있는 중이다. 특히 브랜딩이란 개념에 대해 새롭게 배우는 것이 많다. 결국 마케팅의 본질은 소통, 공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3년간 다양한 장소,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며 배운 것들이 마케터로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내야 할 때 큰 힘이 되어 줌을 느낀다. 지금 이 곳에서의 배움도 나중에 돌아보면 connecting dots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마케터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내 이야기를 이렇게 나눌 용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매일 콘텐츠를 고민하고, 기획하고,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과정이 '나'라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마케터이자 롤모델인 혜윤 님의 클래스를 듣던 어제, 이 말씀이 내 마음에 확 들어왔다.
자신의 인생을 디자인하고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모두가 자기 삶에 아티스트입니다. 우리 내면에는 나만의 것을 만들고 선보일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아티스트란 내 마음이 하는 얘기에 귀 기울여주고, 그 방향으로 내가 즐거워하는 순간들을 찾아 행동하면서 나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꼭 예술가나 디자이너, 뮤지션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니. 이 말에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도 나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펼쳐보고 싶어 졌다. 더 좋은 브랜드 마케터가 되기 위해, 그리고 내 삶의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한 걸음 더 발을 떼어 도전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