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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짓는사람 Jul 07. 2023

인간극장을 찍으며.

어쩌다 보니 집을 짓는 도중 인간극장에 출연하게 됐다. 당연히 주인공은 아니고 살짝 나온 정도였지만 공중파 방송에서 내 얼굴이 나오다니 신기하긴 했다.

처음엔 부담스러워서 출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문작가님, 손작가님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방송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촬영에 협조하기로 했다. 두 분이 진심으로 청년들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기에, 나도 그 도움을 전적으로 받았기에 기꺼이 응할 수 있었다. 촬영은 22년 11월에 진행됐다. 피디님과 촬영 감독님이 거의 한 달 동안 함께 계셨고 틈틈이 나에게 질문도 하셨다. 그때 받았던 질문들과 나의 고민들, 그리고 촬영 과정 중에 떠오른 생각들을 한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1.

“여섯 평 작은 집, 살기에 너무 좁을 것 같지 않나요?”

처음엔 이렇게 답했다. 아직 안 살아봐서 잘 모르겠지만 도시가 아닌 시골이니까 밖에 마당도 있고, 자연도 있으니 답답하지 않을 것 같다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답은 온전한 나의 대답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예상하거나 짐작해 볼 수 있는 통념 같은 답변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 질문이 자꾸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작은 집, 작은 집.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언제 여섯 평 이상의 공간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대학을 다니며, 또 서울로 상경하여 나는 꽤 오랫동안 고시원과 원룸을 전전했다. 침대와 옷장이 합쳐져서 발도 제대로 뻗지 못하는 고시원부터 이불 하나 펼치면 꽉 차는, 빨래를 널기 위한 건조대 하나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원룸까지. 그런 내가 현재 친구와 함께 방 두 개 있는 14평 집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이 집을 작은 집이라고 부를 수가 있는 것일까. 이 ‘작은 집’은 내가 살았던 딱 평균 크기의 집인데. 나는 살아본 적도 없는 24평, 혹은 33평이라는 일반적 기준에 집의 크기를 상정시켜 놓고는 6평이 당연히 작다고 생각했던 나의 모순에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만약 그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오히려 이전보다 답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 질문이 이제는 현재의 나뿐만 아니라 과거의 나를 소환하기 때문이다. 기억 저편에 넣어두고 잊고 있었던 삶의 조각들이 떠올랐다. 작은 집이 아니라 정말로 작은 ‘방’에 살았던 시간들과 옴짝달싹 할 수 없던 나의 몸과 마음들이.

어쩌면 이 질문은 내가 아닌 도시에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여섯 평, 아니 그보다 더 작은 집에 사는 것이 괜찮은지 말이다.



#2.

“집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말은 인간극장뿐만 아니라 집을 지으면서 정말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여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나는 전혀 아니었다.

처음에 나는 왜 집을 직접 지을 생각을 했을까. 많은 이유들을 댈 수 있지만 솔직히 얘기하면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돈이 많았다면 아마 농막을 구매했거나 누군가에게 돈 주고 맡겼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딱 천만 원이 있었고 그 돈으로 집을 지어야 했다. 그래서 인건비라도 아끼고자 직접 집을 직접 짓기로 한 것이었다.

처음엔 부모님께 말씀도 안 드렸다. 걱정하실까 봐. 왜 그렇게 힘들게 집을 지으려 하냐고 타박하실까 봐. 나라고 안 그랬을까. 나도 자신 없었다. 호기롭게 제천으로 내려왔지만 한편으로는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다. 거기엔 박탈감도 있었을 거다.

‘그래, 돈만 많으면 내가 남을 시켰지, 이 노가다를 한다고 했겠어?’

그런데 집을 짓기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돈이 없었던 과거의 내가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돈을 주고 농막 샀으면 어쩔 뻔했는지. 이 기쁨을 평생 몰랐을 거 아니냐고.

이제 나는 사람들에게 얘기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서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다고 해도, 한번 지어본 이상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라고. 다시 지어도 나는 내 손으로 직접 지을 거라고. 이 힘들고 고된 일을 나는 또 기꺼이 할 것이라고. 왜냐하면 이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임을 알기에. 이 어마어마한 기쁨과 행복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 있게 저 질문에 답할 것이다.

직접 지으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몸은 분명 고되지만 마음은 대체로 행복하고 때때로 더 행복하다고.





#3.

영화를 찍거나 촬영을 하면서 나는 늘 카메라를 들고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었는데 인간극장을 찍으며  촬영 대상이 되고 인터뷰를 당하는(?) 경험을 했다. 민망하고 부끄러웠지만 이것 또한 재밌는 경험이라 여기며 즐겨보기로 했다. 한편으론 찍히는 분들 입장에서는 이랬겠구나,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짐작해 보며 미숙했던 나를 반성하기도 했다. 긴 촬영이 끝나고 드디어 마지막 날, 피디님과 촬영 감독님, 조연출 님과 함께 뒤풀이를 했다. 술도 한 잔 하며 이런저런 속 깊은 이야기를 처음으로 나누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피디님에게 나 혼자 품었던 어리석은 생각에 대해 고백했다.

솔직히 처음엔, 피디님이 출연자에게 진심일 거라는 생각이 많이 없었다고. 어떤 직업적인 이유로 이렇게 섭외를 하고 촬영을 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실 테지만 거기에 진심이나 애정 같은 것이 많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고.

나는 피디님과 스텝분들이 나를 잠깐 스치는 사람처럼 여길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왜냐하면 수없이 많은 인간극장 출연자들을 만났을 것이고 이야기를 나눴을 테니. 물론 우리가 촬영하는 건 인생에 단 한 번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불현듯, 느꼈다.

‘아니, 나도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영화를 찍으며 많은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이 인연을 허투루 생각한 적 없었다. 늘 진심이었고, 진실로 그분들을 사랑했다.

사실 어떤 애정이 없이는 촬영을 할 수도,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도 없다. 하다못해 생계형 알바를 하며 만난 말도 안 되는 정치인도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애정을 가지게 된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상하게 그렇게 됐다. 정말 단 한 명을 빼고 정치색, 인품 등 그 어떤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영상도 만들다 보면 애정이 생겼다. 하물며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직접 찾아가고 일상을 함께 하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는 오죽할까. 애정 없이 이야기를 그것도 30분, 5부작을 만들어내기란 정말 불가능하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너무 죄송스러웠다. 그래도 어떻게 보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일을 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사실에 더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런 마음을 품은 것, 죄송하다고. 지금은 안다고. 그런 마음이 아니실 거라 짐작해 본다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나의 영화에 대해서, 그리고 내 영화에 나와주셨던 분들에 대해서. 촬영하는 기간 중 나를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에 대해. 잠깐이라도 내가 했던 그런 마음을 품으셨을까 죄송하고 또 마음이 아려온다. 나의 진심이 그분들에게, 그 친구들에게 가 닿았길 바랄 뿐이다.

 그립고 보고 싶다. 단지 내가  서툰 인간이라 표현도, 연락도 자주 하지 못하지만   마음속에 결코 잊히지 않을 존재로 콕콕 박혀있다는 것을 이제와 고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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