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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짓는사람 Jul 11. 2023

제대로 산다는 것.

어느 날 꿀을 작은 유리병에 옮겨 담아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야 발을 땅에 딛고 사는 것 같다고. 


늘 땅에 발 붙이지 못하고 조금은 허공에 떠있는 상태로 사는 것만 같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유야 시기마다 다양했지만 성인이 되고는 대부분의 삶을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한창 심할 때는 내 손을 만져도, 내 몸을 만져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나의 손을 내가 만지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그것이 몸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앞에 있는 친구가 한창 떠들고 있는데 나의 정신은 어느새 어딘가로 도망쳐버려 반응도 기억도 하지 못했다. 몸은 분명 여기에 있는데, 나의 의식은 저기 어딘가쯤에 흩어져버리고 있었다. 마치 헬륨가스가 들어있는 작은 풍선처럼, 무게추가 있는 몸에서 둥둥 떠올라 목적도 방향도 없이 휘날렸다.


그런 나에게 상담 선생님은 ‘관찰하기’를 해보라고 하셨다. 눈, 귀, 입의 감각에 집중하면서 나의 몸과 의식을 일치시키는 연습을 시킨 것이다. 그 작업은 큰 마음을 먹고 시작해야 했는데 하는 동안에도 수시로 도망가버리는 의식에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고, 잠깐 ‘내’가 몸을 스쳤다 지나가면 그 감각이 또 신기하면서도 서글퍼지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나의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게 가능하기는 한 건지 막막한 날들이었다. 산다는 것이 이런 건 아닐 텐데 이런 게 삶이라면,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삶을 중단한다는 것은 내 의지 밖의 일이었다. 


살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두 발을 땅에 딛고 그렇게 제대로 살고 싶었다. 이 절박한 마음으로 집을 짓기 시작했고 몇 개월 뒤, 도시를 떠나 내가 지은 작은 집에서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이 과정 속에서 참 많은 것이 변했다. 이전의 나는 이제, 애써서 기억해 내야 할 만큼 너무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더 이상 허공으로 흩어진 나의 의식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 일거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나는 ‘관찰하기’라는 숙제를 받아 들고서야 나의 몸과 의식을 순간이나마 일치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집을 지으며, 그리고 시골 생활을 하며 나는 그저 ‘지금, 여기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그 당연하지만 어려웠던 감각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조금씩 길게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곧 내가 현재에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충분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삼시세끼 나의 끼니를 챙기고, 흐트러진 주변을 정리하는 것. 그릇이 쌓이지 않게 바로 설거지를 해두고, 해가 좋은 날엔 빨래를 돌려 건조대에 탈탈 털어 널어놓는 것. 햇볕에 바싹 마른 수건과 옷가지들을 개켜 옷장에 넣어두고, 장을 봐 온 식재료들을 먹기 좋게 손질해서 정리해 두는 것. 그리고 어떤 날엔 큰 통에 담긴 꿀을 먹기 좋게 작은 유리병에 옮겨 담아놓는 다소 특별한 일들 까지. 이렇게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들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는 요즘, 이 특별할 것 없는 순간들에 나는 문득문득, 이제야 두 발을 땅에 딛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전엔 분명 이 일들은 투 두 리스트에 적혀 영혼 없이 해치우듯 해야 했던 일이었고, 우선순위 일들에 밀려 남는 시간에 짬짬이 처리해야 했던 일이었고, 누군가가 말하는 성공 법칙과는 가장 거리가 먼 것 같은 일이었다. 중요하지도, 의미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건 참 우습게도 나를 먹여 살리고, 나를 잘 돌보는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의 나’만을 챙기는 일이었다. 이처럼 거창한 목표도, 달콤한 성공과 미래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일들만 했을 뿐인데 나는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그토록 불편한 마음으로 달려왔는지, 괴로운 나날들을 보냈어야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목표를 향해 독하게 달리고, 끈질기게 노력해서 성공이라는 트로피를 쟁취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나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한데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이 죽도록 싫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 기준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발을 땅에 꾹 딛고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지금 나에게 있어 ‘제대로 산다’는 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현재를 사는 것.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에 저당 잡히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 

그리고 나 자신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 


그래서 요즘엔 미뤄뒀던 일들을 하나씩 해보고 있다. 

베이킹을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마음먹고 이것저것 오븐에 구워보고 있고, 얼마 전에는 피아노 학원에 등록도 했다. 베토벤의 비창 2악장을 꼭 내 손으로 쳐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커리어나 성공과는 전혀 상관없고, 돈 버는 것에도 일절 관련 없는 일들을 오직 지금의 내가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하고 있다. 뚱땅뚱땅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있으니 또 문득,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감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충분했다. 누군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나 자신이 되어보려는 이 시간이. 


이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나는 조금씩 삶에 대해 배우고 있다. 나를 더 깊이 알아가고 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이거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온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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