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행(我小行): 나를 돌보는 작은 실천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고 해서 /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 나에게 고통이 없다는 뜻은 정말 아닙니다.
마음의 문 활짝 열면 / 행복은 천 개의 얼굴로
아니 무한대로 오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경험합니다. -중략-
이해인 수녀님의 《행복의 얼굴》이라는 시의 첫 구절을 나는 특히 좋아한다. 마음의 스위치가 내려갔을 때 읽다 보면 가만가만 위로가 된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천 개의 얼굴로 무한대로 오는 행복, 아직은 꿈같지만 이루고 싶다.
작년 코로나 팬데믹 직전, 10년 넘게 살았던 넓은 아파트를 팔고, 작은 전세 아파트로 6식구가 구겨지듯 이사를 했다. 잘못된 판단으로 투자를 하며 생긴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도움을 줄 거라 기대했던 남편은 오히려 잘나가던 직업을 던져버리고 자발적 살림남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코로나와 함께 떠밀리듯 6식구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 엉겁결에 내 무릎에 떨어진 십자가를 숙제하듯 짊어졌지만, 원치 않은 족쇄 안에서 헐떡이던 내 영혼이 숨 쉴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아소행’을 매일매일 기록하는 것이었다.
아소행(我小行)이란 나(我)를 돌보는 소소한(小) 활동(行)이라는 의미로 내가 만들어본 말이다.
지난 5개월간 기록해본 아소행을 통해 ‘따뜻함, 성취감, 관계의 소통’이라는 감각에 내가 더 행복해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세가지 행복한 감각을 통해 나를 소개해 볼까한다.
나는 몸과 마음의 추위를 잘 타는 편이다.
작년 한 해 코로나 상황이라 직원 수를 줄이고 직접 뛰며 온몸으로 일해야 했다. 그래서 춥고 지친 상태로 집에 가서 누우면 씻으러 일어나질 못했다. 이런 나를 위해 막내가 내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았다. “엄마~ 욕조 물 받았으니, 눕지 말고 먼저 씻어.” “오~ 그래? 지혜야, 고마워.” 꽁꽁 얼고 지쳤던 몸뚱이가 따뜻한 욕조 물에 담가지면 흐물흐물 액체 인간이 된다. 작은 목욕탕 욕조에 비스듬히 누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바라보는 따뜻한 나른함에 행복하다. 어떤 날은 들어서자마자 막내의 진한 포옹을 덤으로 받는다. “엄마~ 오늘도 수고했지~~” 목을 감싸 안고 등을 토닥토닥 다독여주는 초등학교 6학년인 이 아이가 무엇을 느낀 걸까? 딸에게서 천국의 포옹을 받았다. 나는 천국에 살고 있다.
나는 임상 20년 차 뿌듯한 한의사다.
며칠 전 60대 여성 환자 분이 오랜만에 내원하셨다. 2년 전 좌골신경통으로 한약과 추나 치료를 꾸준히 받았던 분이기도 해서 “ 허리, 종아리 통증이 굉장히 심했는데, 아직도 불편하세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때 진료 마무리하면서 원장님이 알려준 운동법 매일 매일 했더니 지금까지 멀쩡해요.” 하며 환하게 웃는다. 환자분의 고통을 들어주고 아픈 곳을 살펴주는 내 직업을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건강해진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참 행복하다. 강산이 두 번 바뀌었을 그 세월 속에 녹아있는 나의 행복했던 순간들, 지금부터 소중하게 정리해 놓고 싶다.
이심전심을 느끼는 순간들이 짜릿하다.
우울하거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친구나 동생이 불현듯 안부를 물어올 때가 있다. ‘잘 지내? 집에 가는 길에 톡해. 오늘 갑자기 보고 싶어지네.’ 무심히 보내주는 책 선물에 좋아하는 커피 쿠폰을 보내주는 마음. 한의원 근처 지나간다고 전화해 안부를 묻는 목소리. 서로에게 길든 시간과 공간 너머 서로를 꿰고 있다는 이 느낌, 서로에 대한 배려와 진심이 와닿았을 때 난 참 행복하다.
안팎으로 힘들었던 작년 한 해를 지내보면서 행복도 습관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하다고 하지 않던가! 조용히 앉아 나비가 내려앉기를 무작정 기다리기보다 나비가 나를 찾아오도록 어깨에 꿀을 발라보면 어떨까? 행복도 습관이라 행동하기가 먼저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무한대의 행복을 경험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올해도 자발적 행복에 대한 나의 기록 ‘아소행(我小行)’은 계속된다.
행복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려고 했더니 행복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