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운명...
아티스트 웨이 3주차: 힘을 회복한다.
이번 주에는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에너지의 폭발과 분노, 기쁨, 슬픔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예전에 한계라고 여겼던 것들이 뒤흔들리면서 당신은 자신의 힘을 되찾게 된다. 여기서는 마음을 열고 의식적으로 실험해야 한다.
고민과 걱정스러운 일을 이야기하면 고민과 걱정을 대신 가져가 버린다는 걱정 인형.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일을 결정해야 할 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여지는 일이 있을 때, 너무도 얼토당토않은 일로 SOS를 해야 할 때, 걱정 인형처럼 언제나 마음 길이 먼저 가닿는 소중한 인연이 있습니다.
‘다 좋은 일이야.’ 걱정 인형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4회기 부모교육을 강의하러 간 작은 초등학교에서였어요. 그녀는 아주 낡고 꼬질꼬질한 포대기에 어린 젖먹이를 질끈 동여매어 등에 업고 있었어요. 혹시나 아이가 울거나 칭얼대서 강의에 방해될까 봐 맨 뒤에 서서 아이를 얼러가며 열심히 강의 듣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월남치마 같은 긴 치마를 편하게 걸치고, 얼굴에 머리카락 한 올도 흘러내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긴 머리를 야무지게 하나로 틀어 올린, 암튼 그때 그녀는 그냥 딱 전업주부였지요. 그랬던 그녀가 짧은 머리를 하고 어느 날 나타나, 개업한다며 명함을 건넸을 때 한의사인 걸 알고는 깜짝 놀랐지 뭡니까?”
당시 공무원인 남편을 따라간 4년 동안의 대전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발령받아 막 내려왔던 때였습니다. 큰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부모교육을 해준다기에, 8개월 된 떡 애기 넷째를 안고 참석하면서 사랑하는 걱정 인형 1호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전국구 전문 강사입니다. 그것도 교육담당자들이 섭외하고 싶은 선호도 Top 10안에 들 정도로 실력 있는 강사지요. 그때까지는 전공 관련 강의 외에 다른 분야의 강의나 교육을 접한 적이 없었던 나에게 그 친구의 강의는 심장을 벌떡벌떡 뛰게 하고 온몸에 전율을 돋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수백 명의 청중을 들었다 놨다, 웃고 울리는 이 작은 거인의 쓰나미와 같은 카리스마를 보고 있노라면 무당이 굿을 하며 접신 하는 경지도 저렇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그만큼 그 친구의 강의력은 듣는 이의 마음을 확 잡아끄는 마력이 있습니다. ‘저렇게 작고 여린 몸에서 어떻게 이런 어마어마한 열정과 에너지가 뿜어 나올 수 있을까? 나도 저 강사님처럼 강의하고 싶다.‘ 라는 희망을 작은 종이 딱지처럼 접어 가슴에 품게 되었지요.
막내가 돌이 지나, 집안일과 아이들 봐줄 분을 구하고 나자, 가장 먼저 그 친구가 운영하는 교육원을 수소문해서 찾아갔습니다. 청중에게 감동과 여운을 주는 강의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연한 그 친구와의 만남 속에서 필연의 끈을 잡아 매일매일을 엮어갔던 시간이 오늘이라는 운명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의 강의력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폭넓으면서도 꾸준한 독서력과 깊은 통찰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애정과 선한 영향을 주는 자신의 업에 대한 열정이 한데 잘 버무려진 그녀만의 무대 예술이었습니다.
강의하러 전국을 다니고, 많은 사람을 코칭 하면서 그 바쁜 와중에도 거의 늘 먼저 연락을 합니다. “근처 지나가면서 연락했어. 잘 지내지? 무슨 일 없고?” 익숙한 카카오톡이나 무심한 듯 던지는 전화 목소리를 접하노라면 나도 모르게 마음속 깊이 꾸깃꾸깃 구겨놓았던 걱정거리들을 굽이굽이 펴놓습니다. 황진이가 춘풍 이불 아래 베어 넣어둔 동지섣달 기나긴 밤을 ’구비‘ ’구비‘ 펴듯 말입니다. 그녀는 나의 인간 걱정 인형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끝없는 걱정거리, 결정 거리도 그 친구와 이야기하다 보면 이래서 감사하고 저래서 감사하게 되니, 어떠한 나쁜 상황도 마지막엔 “이것도 다 좋은 일이야.”로 끄덕이며 끝이 납니다. 그녀는 참 신통방통한 감사에 대한 통찰력을 지녔습니다.
“인간의 모든 욕망의 끝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인데, 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매번 고통이고 이 고통의 저변에는 불안이 있어. 그래서 행복은 결국엔 누가 더 이 불안의 불씨를 빨리 끄고 잠재우느냐에 달린 것 같아.”라고 답하던 나의 걱정 인형. 그러면서 불안의 불씨를 조절하는 수련법으로 매일 감사일기를 함께 쓰자며 제안해 주었습니다. 긍정의 에너지 가득한 친구 곁에서 물들어온 농도의 깊이만큼 덕분에 삶에 대한 감사력도, 행복력도 무르익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온갖 잡다한 생각과 고민을 들어주며 “이것도 다 좋은 일이야.”로 마음 돌려 앞으로 걸어가게 해주는 걱정 인형이 내게 있어 무척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걱정과 고민을 함께 나누며 살아갈 힘을 회복시키는 걱정 인형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