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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니 Mar 21. 2024

대학병원 진료를 거부당하다

의사 파업으로 세브란스 진료 불가


많이 불안하면 의뢰서 써드릴까요?


HPV 검사를 받았던 병원에서 결과를 듣고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많이 불안해하는 나에게 2차 병원 말고 대학병원 진료를 권했다. 하긴 내 성격에 이렇게 위험한 바이러스를 가지고 어떻게 6개월 동안 기다리라는 말인가 싶었다.

그러다 집 근처에 있는 세브란스병원이 떠올랐다.


“네. 혹시 신촌 세브란스로 의뢰서 가능할까요? “

“가능하죠. 그런데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의사 파업 중인 건 알고 계시죠? 연계병원이라 잘 받아주긴 할 텐데 진료가 불가능할 수도 있어요.”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이게 더 내 마음이 편해지는 일이라 생각해서 의뢰서를 받아왔다.


남자친구와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16번 바이러스 진단을 받은 뒤로 2~3일 동안은 멘탈을 제대로 붙잡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남자친구는 소멸될 거고 이겨낼 수 있다며 나에게 긍정적인 말을 해주었다.


세브란스병원으로 전원 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여러 교수님들이 계셨다. 그중 부인과 질환이다 보니 아무래도 여자 교수님이 편하겠다 싶어 찾아보았다. 자궁경부암 관련하여 진료하시는 한 분이 계셨다. 전화예약만 가능하다고 해서 고민할 틈 없이 바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상담원이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세브란스병원입니다. 어떤 걸로 전화 주셨나요?”

“안녕하세요. 아, 제가 이번에 HPV 검사에서 바이러스가 검출이 되어서요. 자궁경부암 관련해서 진료를 받고 싶어서 전화드렸는데 여자 교수님으로 진료 예약이 가능할까요? “

“제가 산부인과 쪽으로 확인해 보고 8시 30분 이후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

“이 번호로 연락 주시는 건가요?”

“네. 이 번호로 연락 올 거예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단 전화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음날인 토요일에 오빠는 학교로 공부하러 가고, 나는 세브란스로 향했다. 심각한 마음을 억지로라도 달래 보기 위해, 지금 누리는 일상의 소중함과 행복에 대해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안 좋은 생각으로 계속 걱정해서 악화시키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바이러스 덕분에 이렇게 지금 손잡고 같이 갈 수 있게 되었네? “

“바이러스 덕분인 건 아니지.”


도서관 앞에서 오빠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눈 다음 나는 세브란스로 향했다. 집 근처에 있다는 것만 알았지 초행길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겨우겨우 본관을 찾아 들어갔다. 처음 가본 세브란스 병원의 첫인상은 큰 병원이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간호사 분들은 바쁘신 건지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계셨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갈팡질팡 하고 있던 내 앞에 안내데스크가 보였다. 그곳에는 남자 직원분이 서 계셨다.


“저.. 혹시 산부인과로 가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산부인과는 이 건물 4층에 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를 찾던 중 우연히 1층에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발견했다.

무의식적으로 2차 병원에서만 보던 엘리베이터를 찾았다는 생각에 살짝 머쓱했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 올라갔다.

어라? 근데 1층에서 한 번만 올라갔는데 4층이라고 적혀있었다. 산부인과라는 팻말도 붙어있었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어갔다. 산부인과 앞에 도착했지만 불도 꺼져있었고 무언가 이상했다. 뒤늦게 매주 토요일에는 진료가 따로 없다는 글을 보게 되었고, 혹시나 싶어 바로 옆에 있던 영상의학과에 근무하시는 분께 여쭤보았다.


“저.. 혹시 오늘 산부인과는 따로 진료가 없는 날인가요?”

“네. 그런 것 같더라고요.”


걱정과 기대를 안고 왔는데 이게 웬 말인가 싶었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온 내 잘못이라 생각하고 다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갔다. 걸어가는 도중에도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고, 이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맘카페에 들어가 검색창에 ‘HPV16번’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 바이러스를 가지고 계셨다. 어쩌다가 내가 HPV 그것도 고위험군 가운데서도 가장 위험하다는, 암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인 16번 바이러스 보균자가 되었단 말인가.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마음속에서는 불안감이 요동치고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세포검사를 받겠다고 2차 병원에서 당장 검사를 미룬 상태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리 예정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남자친구에게 오늘 일을 이야기했더니 월요일에 전화 주시기로 했으니 일단 기다려보자고 했다.


월요일이 되었고, 정말 8시 30분이 지나자마자 정확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고민할 틈도 없이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얼마 전에 전화 주셨었죠? 저희가 산부인과 쪽에 전화해서 알아봤는데.. 요즘 전공의들 파업하신 거 아시죠? 여자 교수님께서도 초진 환자는 따로 안 받으신다고 하네요.”

“남자 교수님이라도 상관없으니까 진료는 불가능할까요?”

“네. 지금이 상황인지라 진료가 어려울 것 같아요. 너무 불안하시면 동네병원이라도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전화가 끊기자마자 덜컥 겁이 났다.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대로 나는 16번 바이러스로 인해 자궁경부암에 걸리고 죽는 건가?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편인데 진료를 받지 못한다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남자친구에게는 카톡으로 이 사실을 알렸고, 얘기를 들은 남자친구는 나쁜 놈들이라며 화를 내주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어서 2차 병원 중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 얼마 전에 처음 다녀왔던 병원의 의사 선생님 얼굴이 떠올라 곧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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