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HPV16번과의 첫 만남
“HPV16번 나오셨어요
이 한마디에 나의 세상은 무너지는 듯했다.
전혀 예상 못한 일이라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손이 벌벌 떨리다 못해 그만 휴대폰을 떨어트릴뻔했다.
사실 나는 몇 달 전까지 동네 산부인과에서 코디네이터로 근무했다. 산부인과에서 일을 하면 좋은 점은 1년에 한 번씩 직원 검진을 받을 수가 있었고, 질 분비물을 채취하여 PCR기법으로 원인균을 찾아내는 STD12종 검사와 HPV 검사, 자궁경부 액상세포검사, 각종 웨딩검진 항목을 받았다. 당시 모든 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나는 내 남자친구가 HPV 보균자가 아님이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약 3년간 만나 오면서 그동안 여러 번의 추적 검사동안 한 번도 아무런 바이러스가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위험군 16번 바이러스가 자궁 경부 상피세포 속에 잠복기로 들어가 숨어있다가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초봄에서야 나타난 듯했다.
나는 눈물을 흘릴 새도 없이 병원에 상담을 하기 위해 집에 불을 끄는 것도 잊고 정신없이 나갔다. 그냥 병원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동안 아픈 곳 하나 없이 건강했는데 자궁경부에 문제가 생겨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과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그렇게 뛰던 중 남자친구가 떠올라 너무 미안했다. 다행히 바이러스가 나온 시점이 극 초기였기에 남자친구에게 바이러스가 옮겨지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전에 있었던 안 좋은 기억으로 인해 옮았던 바이러스인 것 같다.
그제야 울며 남자친구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남자친구는 별일 없을 거라며 위로해 줬지만, 이미 워낙 이런 분야에 대해 잘 알고 관심이 있던 터라 앞으로의 걱정이 먼저 앞섰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도 정신이 하나도 없고 진정이 되지 않아 남자친구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바이러스 검사 결과지를 받았다. 결과를 보니 더더욱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정말 이대로 자궁경부암에 걸려 죽겠구나. 그날따라 더 남자친구가 보고 싶어 졌다.
“오빠.. 나 오늘 오빠 집에 가도 돼?”
“음.. 알겠어. 오빠도 정리하고 금방 들어갈게. 저녁 먹고 와서 쉬고 있어. “
남자친구도 뜬금없이 내가 그런 얘기를 하며 걱정을 하니 많이 놀랐을 듯했다. 그래서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저녁을 사 와서 먹었다.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속이 너무 울렁거려 밥을 먹다 화장실에서 그만 토하고 말았다. 하필 가장 위험하다는 자궁경부암 환자의 70%가 가지고 있다는 바이러스를 내가 가지게 된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겨우 밥을 먹은 뒤 혼자 마음을 추스르며 네이버 블로그를 찾아봤다. 의학계에서도 잘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는 16번 바이러스를 면역이나 생활습관만으로 소멸시킨 케이스가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블로그를 구경하다 보니 7시였다.
남자친구가 집으로 온다는 카톡을 보고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해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들어오는 남자친구를 보자마자 울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