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힘들고 미치도록 재밌다?

저항인지 자기통제력인지...

by 낮별

나이가 들면서 나의 인지능력, 인지속도가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대학원에 들어와 두꺼운 전공교재를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절감하고 있다. 읽어도 읽어도 개념이 와닿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머리를 쥐어박고 절망한다. 속으로 '나, 난독증인가? 문해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나? 병원 가서 검사받아봐야 하나?' 이러면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하겠다고... 그런 자책을 자주 한다. 수요일 총장님 특강을 듣고 나오면서 학차가 높은 선배님들과 함께 지하철 역까지 걸어오는데, 선배님들이 똑같은 얘기를 하셨다. 그 순간 대단히 큰 위로를 받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 다들 그렇게 헤매고 있다는 것. 함께 헤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현실은 견딜만해진다.


어제 야간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예전에 지인의 아들이 과학고에 입학하여 첫 한 달을 보내고 집에 와서 했다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미치도록 힘들고 미치도록 재미있어요"

그 말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 아이가 너무너무 부러웠었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래 본 적이 있었나를 떠올려봤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어제 오전에 영어 사설 스터디를 일찌감치 끝내고 잠시 근황 토크를 했는데 한 선생님이 물었다. "학교 다니는 거 어때요?" 나는 그 질문에 "힘들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요"라고 대답했다. 어제 그런 대화를 했던 터이기도 하고, 야간 수업에서 프로이트의 계승 이론들과 '사례개념화'라는 것에 머리에 쥐가 나도록 시달리다 묵직한 가방을 메고 36.5도씨들이 마구 부대끼며 온갖 음식 냄새와 술냄새가 진동하는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는 길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치도록 힘들고 미치도록 재밌다"는 그 아이의 말이 문득 떠올랐던 이유가. 아직까지 '미치도록'은 아니지만 얼추 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재미도 있고, 힘들기도 하다.


성격심리학과 상담심리학에서는 요즘 다행히도 정신역동이론이라는 동일한 부분을 배우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예습과 복습을 시켜주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수월한 부분도 있다. 상담심리학에서는 아무래도 심리치료이론을 더 분화시켜 배우다 보니 어제 자아심리학, 자기 심리학, 대상관계이론을 배우면서 그게 그거 같은데 왜 이렇게 나눠놨는지 프로이트를 계승한 이들이 원망스러웠다. 자아와 자기 개념도 제대로 구분하여 인식하지 못하는 지경이니 혼란스러웠다. 수업 중에 슬쩍슬쩍 ai에게 물어보며 수업을 쫓아갔다. '자아'란 의식을 포함한 개념, '자기'란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 자아보다 넓은 개념. 이렇게 정리하고 지나가도 또 잊어버리고 헤맬 것이 분명하다. 나이 마흔, 쉰이 넘어서도 내적 갈등, 관계의 문제를 어린 시절 까마득한 과거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프로이트식의 심리이론이 나는 늘 불편했었다. 다시 공부해 봐도 여전히 불편하다. 이 또한 나의 '저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내담자 경험을 두려워한다. 무료 내담자 10회기를 신청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상처들을 다 헤집어 놓고 싶지 않아서...


시네마테라피 수업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써서 제출하고 조별 토론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나는 느닷없이 눈물이 고였다. 왜 불쑥 그런 고백을 했을까?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을 보고, 동일시한 인물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그랬다. 나인틴 헌드레드를 끝내 설득하지 못하고 돌아서 나오는 친구 맥스를 보면서 맥스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를 생각했다. 그 죄책감, 상실감, 슬픔... 나는 맥스 얘기를 하다 말고 엄마가 떠올랐고, 떠오른 대로 마음을 내어놓았다. 내 눈에 눈물이 슬쩍 비춘 걸 눈치챈 우리 조 선생님들...ㅠㅠ 같은 조 학우에서 갑자기 상담자 모드로 돌변하여 다정한 눈빛으로 "괜찮아요. 그럴 수 있어요. 아직 마음에 남아 있어서 그런 거니까 다 꺼내놔도 좋아요"라며 나의 눈물을 부추겼다. 더 울어라 울어라 하고. 나는 화들짝 정신 차리고, 그러니까 저항 발동, 어쩌면 자기통제력. "제가 왜 이런 얘기까지 해서... 정말 주책이네요. 엄마 얘기는 제 눈물버튼인데 괜히 얘길 꺼냈습니다. 이런 상실감 상처 누구나 다 있는데 말이죠." "마음을 얘기하고 나니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물었고,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부끄러워요. 이 나이 되면 이런 감정은 스스로 컨트롤하며 살아야 하는데... 나만 겪는 일도 아닌데 유난 떠는 것 같아서요." "말하고 울고 나니 후련해요"라는 정답을 기대했던 상담자 모드 우리 조 선생님은 '저항이 장난이 아닌걸?'하고 느낀 듯 절망적인 눈빛이었다.


감정은 스스로 컨트롤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 정말이지 나는 그랬다. 스스로 컨트롤하기 위해 나는 글을 쓴다. 언젠가 말했듯 브런치 이 공간은 내게 있어서 심리치료소이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기뻤던 일, 슬펐던 일, 마음에 남았던 것들을 기록해가며 나름대로 나를 정리하는 곳이다. 예전에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도 그랬다. 나는 그렇게 살아남았고, 지금의 나에 이르렀다. 나의 혼돈, 불안, 슬픔, 상처를 남에게 공개하는 것의 효능감을 알지 못하면서 상담자가 되겠다고 이렇듯 나선 것이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나는 다만 내 마음을 정돈하여 표현하는 것, 그러니까 글쓰기의 효능감을 믿으니 인문상담을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상담을 알아갈수록 혼란스럽다. 내가 상담에 대해 높고 견고하게 쌓아둔 벽을 허물지 못한다면, 이 길을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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