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산

괜히 사서 하는 고생

by 낮별


긴 추석연휴 동안 학교도 쉬었고 브런치 글도 한 주 쉬었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데다 차례까지 없애고 나니 연휴에 해야 할 일이라고는 봉안당 다녀오고 집에서 쉬는 일 밖에 없었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어딘지 허전했다. 친정 부모님 성묘를 못해서다. 연휴는 길었지만 구태여 꽉 막힌 도로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 장거리 엄두를 못 냈다. 다른 날에 가자며. 말은 그렇게 해놨는데, 막상 연휴가 끝나고 내게 닥친 과제들을 생각해 보니 갈 수 있는 날이 요원하다. 연휴 동안 차가 막혔어도 갔다 왔어야 했다. 이렇게 하나마나한 후회 중이다. 길고 긴 연휴 동안 집에서 편안하게 늘어져 실컷 먹고 마시며 놀았더니 월요일 아침 학교로 향하는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리고 본격적인 발표들, 중간고사, 과제들이 밀어닥쳤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어제 상담심리학 시간에 발표를 했다. 대학원 입학하고 하는 첫 발표였다. 20분이 채 안 되는 발표를 위해 같이 조를 이룬 분과 함께 추석 연휴에도 한차례 만나고, 발표 전에도 만나서 준비를 했다. ppt는 회사 다닐 때 그러니까 자그마치 20년 전에 해보고 처음 만들어봤다. 처음 몇 슬라이드는 만드는데 수십 분이 걸렸는데 속도가 붙으니 그나마 적응이 되었다. ppt를 잊고 살던 20년 동안 기술이 진일보하여 훨씬 만들기 편해지기도 했다. 내용만 넣으면 만들어준다는 앱도 있다지만, 어설프나마 직접 만들어보았다. 발표를 같이 한 선생님이 깔끔하니 보기 좋다며 마냥 칭찬해 주시니 진짜 그런 줄 알고 어설픈 자료를 용감하게 그대로 선보였다. '에라 모르겠다' 정신이었다.


발표는 어땠을까? 완전 초짜 그대로였다. '청중을 보며 눈을 맞춰야 한다, 스크립트를 그대로 읽는 것은 좋은 발표가 아니다'라고 했는데 나는 완전히 정반대로 했다. 청중의 눈은 단 한 번도 볼 생각을 못했고, 스크립트를 그대로 읽었다. 나의 목표는 '목소리 떨림이 남들이 느껴지지 않게, 차분하게, 적당한 속도로 잘 읽기'였다. 나라고 왜 세바시처럼 자연스럽게, 청중을 응시하며, 농담도 던져가며 발표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래보려고 집에서 연습도 해봤다. 그런데 집에서, 나 혼자뿐인데도 도대체 왜 때문에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고 발표할 내용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건지, 조사는 왜 꼬이고 문장 말미는 왜 처리가 안 되는 건지? 몇 번 그렇게 아득하게 사라지고 꼬여 철퍼덕 넘어지는 걸 경험하고 목표를 아주 낮게 잡았다. 혼자인데도 이러면, 청중들 앞에서는 식은땀 뻘뻘 흘리다 그대로 졸도할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낮게 잡은 목표를 대략 달성했다. '목소리 떨림은 최소한으로 버텨냈고 적당한 속도로 읽었다'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는데 글쎄다. 다음 발표는 청중과 눈을 몇 번 마주치는 것으로 잡아보려고 한다. 나름의 점진적 접근법이다.


발표한 내용은 실존적 심리치료였다. 실존주의 심리학을 기초로 하여 창안된 실존적 심리치료는 요즘 내가 듣고 있는 총장님의 얄롬 특강 시간에 간접적으로 접하고 있는 심리치료이고, 그리고 시네마테라피 철학 상담 시간에 겨우겨우 따라가고 있는 철학 개념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서 도움이 되었다. 비록 상담심리학 교수님은 실존주의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 쿨하게 패스해 버리고 게슈탈트에만 집중하셨지만 말이다. 다음 주에 있을 철학상담 중간고사에도 소소하게나마 도움이 될듯하다.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럽다. 성격, 상담, 철학 세 개의 과목이 알게 모르게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발표가 끝나고 나니 홀가분하겠다고들 하는데 하나도 홀가분하지 않았던 건, 다음 주 월요일에 당장 시험이 있고, 그 시험은 완전히 서술형이라고 하여 부담이 엄청난 까닭이다. 방송대에 다닐 때도 과제와 시험의 부담이 엄청났다. 여섯 과목, 일곱 과목씩 수강했으니 정말이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시험은 무조건 객관식 시험이라 교재를 여러 번 읽고, 강의를 배속 높여 여러 차례 듣기만 해도 훌륭한 점수를 얻을 수 있었고 모든 학기 전액 혹은 반액 장학금을 타냈고 졸업 때 성적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비록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아 상장을 받아보진 못했지만 대학원 지원하려고 성적표 떼보니 내가 그런 상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깨알 자랑해 본다.ㅋㅋ


대학원 시험이 객관식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전적으로 서술형이라는 얘길 들으니 교재 세 권을 앞에다 두고 막막하기만 할 뿐이다. 이걸 다 이해하고 외울 거 외워서 내 말로 정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니까. 게다가 목요일에도 또 시험이 있고, 성격심리학 발표와 시네마테라피 발표도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대학원에 입학하며 남편한테 성적 장학금 탈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무사히 마치기만 해도 대성공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인데...

그러니 황급히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감기까지 걸려 컨디션은 골골하지만 주말 동안 열공할 예정이다. 그나저나 오늘부터 플레이오프 시작인데 야구 보고 싶은 건 어쩌지? 야구는 포기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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