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미화와 자기비하를 넘나들며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니 첫 학기의 절반이 훌쩍 넘어가버린 느낌이다. 발표 두 개 남은 거 끝내고 나면 다시 기말고사 시즌이 당도할 것이고 올 한 해도 끝이다. 친구들이 연말 송년회 일정을 잡기 시작하는 걸 보니 여지없이 실감 난다. 손발이 시리고 몸은 움츠러든다. 가을은 이렇게 몰래 온 손님처럼 왔다 가려나보다. 시간이 너무 쏜살같이 흘러버려서 나이 드는 것도 잊고 있었다. 게다가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니니 나의 마음은 청춘이라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며칠 전 학교 가는 지하철 안에서였다. 내가 서 있던 자리 앞에 앉아있던 여자가 내리고 나는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내가 앉자마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분이 내 앞에 섰다.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일어서서 자리를 양보했다. "여기 앉으세요." 그러자 그 남자분의 표정이 정말이지 복잡 미묘해졌다. "아니, 왜... 그냥 앉으세요. 전 괜찮아요." 그러면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표정에는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말이 담겨있었다. '댁이나 나나 같이 늙어가는 것 같은데 왜 자리를 양보하고 난리인 거죠? 그쪽도 꺾여 보이는구먼...'
이미 양보하기로 마음먹고 일어난 이상 다시 앉을 수가 없어서 몸을 홱 돌려 반대편을 향해 섰다. 그 순간 보고 말았다. 검은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 오십 년 넘게 내게 가해진 중력에 못 버티고 늘어진 내 얼굴, 불룩 솟은 눈밑 지방, 선연한 팔자주름. 아무도 내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을 텐데도 나는 갑자기 얼굴이 홧홧해지면서 그 자리에 서 있기가 힘들어졌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 마지못해 앉아 나의 뒷모습을 보며 별 이상한 여자를 다 보겠네 하고 있을 그 남자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시간을 확인하니 다행히 여유가 있었다. 그래, 자연스럽게 내려서 다음 지하철을 타자. 지금 내 상황, 내 생각 너무 웃기고 부끄럽지만 내 마음 편한 게 장땡이니까 일단 여기서는 벗어나야 한다. 아, 금방 내릴 거라서 양보했구나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내렸다. 내려서 출구 방향으로 걸어가는 척하다 다시 플랫폼에 섰다. 다음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오면서 혼자 속으로 웃어댔다. 야, 정신 차려. 나도 오십 대라고. 누구한테 자리 양보하고 그럴 청춘이 아니란 말이다. 이젠 나도 빼박 어르신. 언젠가 박완서 작가 작품에서 '쉰 먹은 노인네'란 표현을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었는지... 그 구절을 보고 받았던 충격만큼, 검은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충격받았다.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얼굴, 그게 갑자기 그 순간 선명하게 튀어나오다니, 삶이란 참으로 짖꿎다. 별생각 없이 선의로 한 일이 마음에 작은 스크래치를 남겼다. 주제넘은 선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로 풀고 나니 괜찮아졌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서는 역동이 심하게 일어났지만, 이렇게 써보니 별 것 아닌 일이었다.
성격심리학 수업에서 연구계획서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성격 5 요인 관련한 것인데 마침 카카오에 성격 5 요인 검사가 있길래 직접 해봤다. 결과는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우호성은 평균보다 훨씬 높았고 신경성은 평균보다 훨씬 낮았다. 즉, 유연하고, 성실하고, 활발하고, 다정하고, 무던한 사람으로 결과가 나왔다. 검사 결과로 봐서는 불안이나 긴장도가 평균보다 훨씬 낮다는 얘기인데, 실제로도 그러한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특수 상황, 그러니까 발표 같은 특수상황에서의 불안이나 긴장도가 평균 수치를 훨씬 웃도는 것 같다. 오죽하면 발표 때문에 대학원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할 지경이니까 말이다. 지하철에서의 그런 상황에서 마음이 너무 쓰여 얼굴이 불타오르는 걸 봐서도 그렇다. 역시 주관적 판단으로 하는 자기 보고식 조사의 한계인가? 유연하고, 성실하고, 활발하고, 다정하고, 무던한 사람은 내 희망인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완고하고, 게으르고, 차분하고, 냉정하며, 겁나게 예민한 사람인지도... 이렇게 써두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니, 이 편이 더 어울리는 것도 같다. 역시나 자기미화, 혹은 자기기만일 수도.
상담심리학 시간에 사례개념화를 계속 연습 중이다. 어제 수업시간에 사례개념화를 하면서 내담자가 느끼는 인지적 오류(사적 논리)가 도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고 공감이 안 될 경우에는 어떻게 상담을 해야 하는 걸까 고민이 되었다. 이해한 척 공감한 척하는 것도 맞지 않는 것 같고,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따지고 드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 않고,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상담이란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다시금 의문이 들었다. 어제 교지에서 우연히 읽은 글귀가 떠오른다. 어떤 학우님이 상담을 공부하는 소회를 쓴 글이었는데 "한 사람이 배워서 한 가족이 편안해지고 있다"라고 했다. 그거면 충분하다. 좋은 상담자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지 말고 일단은 내게, 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앞으로 나아갈 이유는 충분하다.
할 일은 많고, 머리는 복잡한 가운데 한국시리즈를 즐기는 일상은 참으로 소중하다. 어제저녁 수업이 끝나고 나오니 1:4로 지고 있었는데, 집에 오는 동안 7:4로 뒤집어 경기를 뒤집었다. 세상에나, 이런 야구가 있습니다!!! 집에 와서 하이라이트를 돌려 보면서 나도 주장처럼 울었다. 감동의 눈물이다. 비록 전 남친(현 남편) 따라 입문한 야구지만 야구팬으로 살기로 한 것은 참 잘한 선택이었다. 일 년 중 144일 기대감에 설레고, 운이 좋으면 가을까지 그 설렘이 이어지고, 대박운이 도래하면 우승팀의 팬으로 우승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으니까. 오늘? 어쩌면 모레? 나는 몹시 행복할 예정이다. 큰 기쁨(반대의 상황은 상상불가) 뒤에는 야구 없는 계절을 맞이해야 한다. 길고 긴 겨울 동안 몰두할 무언가를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