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된 피드백과 나의 수많은 인지적 오류에도 불구하고(feat. CBT)
나이 쉰이 넘어 상담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또한 쉬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걸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이번 한 주는 완전히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기분이다.
월요일 성격심리학 시간에 연구계획서 발표가 있었다. 비전공자 1학차에 연구계획서라니, 발표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내내 멘붕이었지만 여차저차 연구 얼개를 잡고 발표 ppt를 만들고 발표를 해치웠다. 발표 직후, 교수님과 학우님들에게서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피드백이 쏟아져 나왔다. 교수님은 '아주 좋은 잘못된 예'를 발견하셨다는 듯 조목조목 지적을 이어나갔다. 나와 함께 조가 된 동기선생님이 답변하느라 진땀을 뺐다. 대부분 "네, 지적 감사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였다. 연구계획서를 어떤 주제로 할까? 뭘 읽고 참고할까? 어떤 이론을 접목시킬까? 연구 방법은 어떻게? 연구분석은 어떻게? 이런 대부분의 결정을 그 선생님의 의견을 따랐던 터라 나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인과관계와 상관관계의 차이도 겨우 알았고, 매개변인과 조절변인의 구분은 여전히 헷갈리고, 연구의 타당도와 신뢰도도 헷갈리고, 연구방법이나 분석방법은 외국어처럼 보인다. 혼자 답변하느라 쩔쩔매는 동기 선생님한테도 미안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 싫어서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그리고는 다시는 그 강의실에 안 나타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얼굴은 시뻘게지고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상태가 아주 말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패닉상태였다.
성격심리학 시간에 대박 깨졌다면서요? 소문은 순식간에 돌았다. 나를 아는 분들은 나를 보며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성격심리학은 듣지 말아야겠다고도 했고, 그 수업을 들으면서 발표를 앞둔 분들은 더 꼼꼼히 준비해야겠다며 눈빛을 번뜩였다. 나는 웃으면서 "괜찮아요. 잘하라고 그러신 건데요, 뭐. 2,3학차쯤에 들으면 유익한 수업 같긴 해요. 교수님 수업이 아주 꽉 차서 좀 알고 들으면 얻어 갈 거 많을 것 같아요. 제가 너무 아무것도 몰라서 힘든 거죠"라고 했고, 괜찮다는 말 빼고는 모두 진심이었다. 그리고 더 잘 준비해야겠다는 결의로 눈빛이 불타오르는 학우님들을 보며 우리 팀이 반면교사가 되었구나 싶어 헛웃음도 나왔다.
그날, 의욕이 모조리 사라져 버려 집에 가서 바로 쓰러져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은 오질 않고 머릿속만 시끄러웠다. 수요일에 있을 얄롬 특강 마지막 수업을 위해 그간의 수업들을 정리하는 미니북을 만들어 가는 것이 당장 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손도 까딱하기 싫었다. 계속 이런 상태면 결국 마지막 수업은 빠져야겠다 싶은 그런 못돼 먹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잠은 위대하다. 오랜 시간 뒤척였지만 힘들게 잠이 들고 난 후에는 꿀잠을 잤다. 실컷 자고 일어나 아이를 등교시켜놓고 나니 전날 완전히 사라졌던 의욕이 다시 스멀스멀 생겨나 노트북을 켜고 앉았다. 일곱 번의 수업 자료를 펼쳐놓고 첫 수업부터 시작하여 그날그날 배운 핵심포인트, 내게 떠오른 단상들, 기억하고 싶은 얄롬의 글귀들을 정리하면서 마음이 아주 평화로워졌다. 미니북을 만들어 오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만 해도, 끝나는 마당에 뭘 그런 걸 시키나... 너무 하기 싫다... 미니북 만드는 건 왜 이렇게 복잡해 보여... 맘 속으로 투덜투덜거렸다. 그랬던 내가 오전 내내 작업을 하면서 '나 이런 거 좋아하네? 이게 왜 힐링되지?'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급하게 만들어 탈고 과정도 없이 대충 훑어만 보고 마무리 짓고 동네 대형 문구점에 가서 표지와 내지를 골라 미니북을 만들어왔다. 그게 뭐라고... 그 작고 얇은 미니북, 내 이름이 인쇄된 나의 첫 책을 손에 잡으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화요일 밤에 멘토 교수님과 첫 1대 1 줌미팅을 했었다. 아주 인자한 얼굴과 자상한 말투로 마치 뭘 알고나 계신 듯 건네신 "혹시 학교 생활에 어려움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나는 냉큼 연구계획서와 발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교수님은 너무나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상담 공부에서 이론 공부는 누구나 어려워해요. 지금 받은 피드백들 앞으로 과제나 논문 작성에 아주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선생님 굉장히 노력하시고, 그만큼 자기 기준이 높은 분 같아요. 이론 공부는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인품이고 자질이에요. 그건 단기간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얘기 나눠보니까 선생님은 그 중요한 것을 이미 갖고 계신 것 같은데요?" 이렇게 감동적인 멘트를 해주셨다. 그 순간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리고, 수요일 얄롬 특강 마지막 수업은.... 그야말로 웃음과 눈물과 감동이 어우러진 시간이었다. 영원히 기억될 시간이었다. 그 순간에는 월요일의 상처가 이렇게 아물어가는구나를 느꼈다. 월요일 수업에서 다친 마음에 총장님과 선생님들이 일심단결하여 연고를 발라주고 호호 불어주는 느낌이었다. 이 수업 안 들었으면 어쩔 뻔했나. 감미로운 첼로 연주, 각자 만들어온 미니북을 돌려보고 롤링페이퍼 나누기, 총장님께서 쏘신 맛있는 피자와 치킨, 여기저기서 터진 눈물... 나도 선생님들이 써주신 다정한 글귀들을 보면서 결국 눈물이 또 그렁그렁 고여버렸다. 내겐 이런 다정함이 필요했나 보다. 무엇이었을까? 낯선 우리를 그토록 연대하고 서로에 기대게 한 것은...
그 순간엔 정말 그랬다. 이젠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고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문득 월요일의 패닉상태가 떠오른다. 그게 떠오르면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을까 다시금 회의하게 된다. 앞으로 닥칠 많은 어려운 난관들마다 이렇게 힘들고 좌절하고 나에게 실망하고...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느낌이 드는 순간, 나는 행복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생각은 끝없이 부정적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어제 상담심리학 시간이었다. 우울증 치료에 아주 효과적이라는 인지행동치료를 배웠는데, 수업시간 내내 나는 그 치료를 나에게 적용시키고 있었다. 온갖 인지적 오류가 모두 내게 해당되는 것 같았다. 확실했다. 현재 나의 상태는 우울감과 무기력이 완전히 장악해 버린 상태인 것이다. 흑백논리, 지나친 일반화, 부정적 사고의 강조, 평가절하적 사고, 성급한 결론, 사고의 확대와 축소, 감정적 추론, 강박적 의무, 낙인찍기, 내 탓이요. 이 모든 인지적 오류가 내 안에 있었다. 정말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로군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를 심층 연구하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과제를 내주셨다. 자신의 인지적 오류를 생각해 보고 대안적 사고를 찾아 reflection paper에 추가해 보내라고 하셨다. 오늘 아침 그 과제를 작성하면서 혼자 울고 짜고 쌩쑈를 했다. '나 정말 왜 이래? 미친 것 같아.' 과제 쓰면서 울고 불고 할 일이냐고...
자동적 사고, 인지적 오류, 대안적 사고를 표로 만들어 나열해서 자아비판과 자아 성찰을 하고 나니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렇게 복잡하게 엉켜있는 마음을 글로 풀어놓고 나니 조금 더 가벼워졌다. 역시, 이 공간은 나의 심리치유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