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지금 이렇구나!

거리를 두고 내 마음을 바라보기(feat. ACT)

by 낮별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 추석 연휴를 제외하고는 매주 금요일 대학원 생활에 대한 글을 작성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뭘 쓰지 뭘 쓰지 고민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주 쓸 것이 있었다는 게 정말 놀랍군.

실은 지난 좌절 경험 이후 지속된 좌절감과 우울감이 이번 주에도 지속되어 아무런 의욕이 없어져버린 상태였다. 아니, 그건 지난 일이라 잊었다고 해도 되지만 발표를 앞두고 있는 조별과제가 큰 부담이다. 오래전 회사 생활을 하던 시절을 끝으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 도모하고 성취한 경험이 없다. 학원을 운영할 때는 그야말로 내 마음대로 꾸렸다. 본사에서 시키는 일도 내키지 않으면 패스했다. 할 수 있겠다 싶은 일 그리고 하고 싶은 것만 열심히 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거나 내 뜻이 아닌 일을 두고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집안일도 내 마음대로였다. 아이들도 남편도 내 말이라면 무조건 받들었다. 그게 문제이다. 조별 과제를 진행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괴감이 들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대학원생씩이나 돼서, 내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지 못하고 타인에 끌려 다니는 모양새이니. 이런 자괴감으로 괴로우니 조별 과제를 왜 내주는 건가 싶은 원망마저 생긴다. 리더는 리더대로 고통스러울 테고. 부족하고 모자랄지언정 그냥 혼자서 해치우는 게 편하다.


수요일에 대화의 케미 J선생님을 만났다. 한동안 여기저기 몸이 아팠던 J선생님은 수척해진 얼굴로 나타났다. J선생님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더니 가만히 듣고서는 툭 한마디 내뱉는다. "그런 조별 과제조차도 힘들어하면 문제 투성이 내담자는 어떻게 만날래요?" 아, 진짜 팩트폭행이다. 그러게요, 그러게 말입니다. 내공이 턱없이 부족한가 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뭔가 배움이 있겠지요." 아마도 그렇겠지요.


요 며칠 계속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 학기 등록을 해야 하나? 이렇게 힘든데, 구태여 이걸 이어가야 하는 건가? 하고...

조별과제는 학차 불문 모든 수업에서 하는 모양새이고 그렇다면 모든 학기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교수님들이 다른 사람과 협력하여 성취하는 경험을 해보도록 의도하고자 하는 의미는 알겠지만 스트레스가 크다. 검색해 보니 그런 글이 보인다. 대학원 생활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가 조별과제, 그다음이 교수님 스트레스, 그리고 학업역량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꼴찌였다. 그 글을 보고, 내심 안도했다. 내가 이상한 건 아닌가 보구나. 이건 진짜, 입학 전에는 상상도 못 해본 종류의 스트레스이다.

어제 상담심리학 시간에는 수용전념치료(ACT)를 배웠다. 인지행동치료의 제3세대 치료라는 ACT는 쉽게 말하면 내담자가 자신의 상황을 수용하고, 내담자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가치를 찾아내어, 그 가치를 위해 전념하도록 돕는 치료이다. 이론적으로 풀어서 그렇지 사실 일상에서도 이런 식의 생각은 익숙하다. 지난 몇 년간 비문증, 방사통과 같은 불편한 증상들로 괴로워하다가 내가 내린 결론은 수용하고 살아가기, 대신 다른 가치 있는 일에 몰두하기였다. 그 중 하나가 대학원 진학이였고. 지난주 수업시간에도 나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인지행동치료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처럼 나는 수업시간 내내 나의 상황을 ACT로 보고자 했다.


'나는 지금 조별과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이런 일이 앞으로 계속될 것 같아 대학원 생활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구나. 아, 내 상태가 지금 그렇구나.'

'그런데 쉽게 그만두지 못할 만큼 이 일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 건가? 있다면 어떤 의미가?'

조별과제 같은 것 빼고는 일단 공부는 어렵긴 하지만 너무 재미있다.

더 공부해서 좋은 상담사가 되고 싶다.

그렇다면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말인데...

바람직하게도 이런 결론을 내며 수업을 끝냈다.


그런데,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동행한 동기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다음 학기에도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점점 자신 없어져요."

한 정거장 만에 내리느라 긴 대화는 이어갈 수 없었지만, 1학 차들이 지금쯤 그런 생각을 할 때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 웃음이 나왔다. "우리 다음 주에 만나서 심도 깊게 대화를 나눠봅시다" 하고 내렸다.


쓸 말 없다면서 주절주절 길게도 썼다. 역시 시작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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