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내담자

자유롭고 즐거운(feat. 현실치료)

by 낮별

영화치료 발표를 끝으로 이번 학기 모든 발표가 끝났다. 영화치료 역시 조별 발표였는데 5명이 한 조가 되어 영화 한 편을 철학적으로, 상담학적 맥락으로 분석하느라 진을 다 뺐다. 중간고사 전까지만 해도 이 수업은 나에게 비교적 힐링의 시간이었다. 비록 철학강의는 조금 어렵게도 느껴졌지만 중간고사 준비를 하며 철학개념과도 한층 가까워진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다. 중간고사 이후 본격적인 조별발표 준비가 시작되었는데 이건 정말이지 내가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조별과제에서 별달리 큰 역할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끌려가야 하는 것 자체가 힘겨웠다. 너무 많은 미팅, 너무 많은 말, 너무 많은 아이디어, 너무 많은 열정이 힘겨웠다.


발표가 끝나고 교수님이 우리 조원들에게 발표 소감을 말하게 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열정이 넘치는 분들을 만나 쫓아가느라고 힘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다른 조 학우님들이 환호성과 박수를 쳤다. 무슨 의미였는지 너무 잘 알아서 웃음이 나왔다. 사실, 우리 조의 발표과제물을 본 분들이 혀를 내둘렀다. 뭘 이렇게까지 했냐며... 다음 조는 어쩌라고 이렇게까지 했냐며... 나의 솔직한 대답 후에 이어진 다른 분들의 대답은 나와는 딴판이었다. 너무 즐거운 경험이었다. 과제가 끝나는 것이 서운할 지경이다... 등등. '나만 힘들었나? 내가 이상한가?' 이런 생각을 하며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가 동기선생님을 교실 앞에서 만났다. 나를 보며 웃으며 "발표 잘했어요?" 잘했겠죠?" 묻길래 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나 좀 잡아줘요. 날아갈 것 같으니까" "와, 잘해서 칭찬받았나 봐요?" "아니요, 끝난 게 좋아서요." 진심으로 발표가 끝나고 나니까 날아갈 듯 기뻤다.


열정적인 분들과 한 조가 되어 어디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여럿이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는 몇 주간을 지나왔다. 비록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뭔가 배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 자체가 배움일지도 모른다.

발표가 끝나고도 나는 왜 조별 과제를 이렇게 힘겨워하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제 상담심리학 시간에 배운 치료 이론이 현실치료였다. 현실치료는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에 따라 현재의 행동을 선택한다는 선택이론을 기본 가정으로 하여 욕구를 알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이론이다. 인간은 모두 다섯 가지의 기본 욕구, 즉 생존, 사랑과 소속, 힘과 성취, 자유, 즐거움에 대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현실치료는 개인의 욕구를 탐색하고, 그 욕구를 위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탐색하고, 욕구와 행동사이의 일치를 평가하고, 새롭게 계획을 세우는 단계로 진행된다. 수업시간에 욕구강도 프로파일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탐색해 보았다. 나의 결과는 다소 놀라웠다. 자유의 욕구와 즐거움의 욕구가 압도적으로 높았고, 생존의 욕구와 사랑과 소속의 욕구는 평균 수준, 힘과 성취 욕구는 현저히 낮았다.


프로파일 해석에 따르면 자유 욕구가 높은 경우, 통제와 강압에 매우 민감하고 스스로 선택해야 에너지가 생긴다고 한다. 내가 조별 과제에서 왜 그런 상태였는지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25년간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서 종종 부딪히던 지점이 생각났다. 남편의 욕구를 탐색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힘과 성취, 혹은 소속의 욕구가 꽤나 높게 나올 것이다. 힘과 성취 욕구가 현저히 낮은 나는 남편의 넘치는 인간관계, 외부 활동이 진저리 나도록 싫어서 종종 부딪히곤 했다. 내 욕구 수준을 알고 나니 나를 둘러싸고 있던 문제들에 머리가 끄덕여졌다. 나는 나를 잘 몰랐다. 영화치료 조별 발표를 같이 했던 선생님 중 한 분이 나에게 말했었다. "선생님은 삶이 자유로운 분 같아요." 그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전혀 의외라고 생각했고, 나는 절대로 자유로운 사람이 못 된다며 손사래를 쳤었다.


사람들마다 욕구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직접 탐색하여 알게 됨으로써 무엇이 달라질까? 나의 욕구를 내세울 생각도, 그의 욕구를 위해 내 욕구를 희생할 생각도 없다. 다만 '우리는 이토록 다른 사람이구나, 그렇구나' 수용하게 되었다. 물론, 수용은 아주 오래전부터 조금씩 해왔던 일이긴 하다. 지난주 배웠던 수용전념치료는 알게 모르게 삶에서 자주 적용해 오던 기법이었던 셈이다.


매주 새로운 상담이론을 접하며 사심을 잔뜩 채우고 있다.

나의 첫 번째 내담자는 나 자신이다.

자유롭고 즐거운 삶을 추구하며, 권력이나 성취에는 별 관심이 없는 내담자이다.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인 줄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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