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너 없이 나는 어떻게 살겠니?

나의 무기력의 1차 정서를 찾아서(feat. EFT)

by 낮별

중간고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금세 기말고사, 기말 과제 시즌이 돌아왔다. 기말 과제가 분량과 내용 모두 녹록지가 않다. 종강 전까지 제출해야 하고, 마지막 주에는 기말고사가 있으니 미리 해두지 않으면 낭패를 보게 생겼다. 기말 과제 중 하나는 지난번 나를 완전히 KO 시켰던 연구계획서를 소논문 형식으로 작성해야 하는 것인데 연구계획서 자체가 엉망이라고 평가받았으니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런저런 지적과 피드백을 받았지만 그것만으로 연구계획서에 대한 나의 기본 소양이 높아진 것이 아닐 테니, 어쩔 수 없이 나는 AI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지난 며칠 동안 챗지피티, 제미나이의 늪에 빠져 살았다.


이번 주 영어사설을 공부하면서 갑자기 현타가 세게 찾아왔다. 사설 주제가 우리의 삶에 깊게 파고든 AI였다. Soon, the day will come when we confess our love to AI, saying, "What would I do without you?" AI에게 네가 없으면 나는 어떻게 하지? 라며 사랑을 고백할 거라니... 몇 주 전에 공부했던 사설에서도 AI는 우리 인간들에게 '인지적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방송대에 다닐 때만 해도 나는 학교 과제를 위해 AI를 활용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대학원에 입학하고 보니 AI를 활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나도 모르게 AI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쓰는 것보다 AI에게 질문부터 던져놓고 시작한다. 정말이지 AI가 없으면 어떡하나 싶다. 이건 순식간에 생긴 변화이다. 사설에서는 이런 변화는 이제 피해 갈 수 없는 흐름이니 어쩔 수 없이 AI를 잘 활용하되 AI에게 통제되거나 조종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뻔한 말로 맺음 했다. 교수들이나 학교 선생들도 학생 평가에 어려움이 있겠으나, 흐름을 받아들여 AI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변화시켜 교육의 질을 향상할 것을 촉구했다. '평가에 어려움이 있겠으나...'이것에 대한 대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들과 줌으로 미팅을 하며 대학원 수업에서 AI가 차지하고 만 작금의 위상을 토로하다가 결국은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과제요? AI가 진짜 끝내주게 해 줘요. 내 머리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니까요. 얼마나 빠른 속도로 분석하고 정리해 주는데요. 대학원에 뭐 하러 왔나 몰라. 이제 석사, 박사 다 의미 없다니까요. 인간들은 이제 잘 놀아야 해." 나의 말에 선생님들은 모두 "그래, 그럼 빨리 관두고 같이 놉시다. 골치 아픈 공부는 AI더러 하라 그러고"라고 말해 우리는 모두 함께 웃었다. 이 말은 어쩌면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다.


어제 상담심리학 시간에 정서중심치료(EFT)를 배웠다. 정서중심치료는 말 그대로 정서가 중심이 된다는 것인데 정서는 1차 적응적 정서, 1차 부적응적 정서, 2차 반응적 정서로 구분된다. 1차 적응적 정서는 이별 뒤에는 슬프고, 위험을 감지하면 불안한 당연한 정서이다. 1차 부적응적 정서는 과거의 경험이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정서인데 왜곡되거나 과장된 정서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바쁘다고 말하는데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것, 누가 나를 조금만 비판해도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2차 반응적 정서는 1차 정서 위에 덧씌워진 정서이다. 불안과 우울, 무기력 뒤에는 사실 분노와 수치심이라는 1차 정서가 내재해 있는 경우가 많다. 정서중심치료는 1차 부적응적 정서와 2차 반응적 정서에서 1차 적응적 정서, 즉 핵심 정서를 찾아내어 그 정서에 오래 머무르도록 하여 결국엔 자신의 욕구를 발견하여 그 정서에서 빠져나오도록 돕는 치료다. 이 정서중심치료를 배우면서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부분이 생각났다. 우리 뇌에는 감정과 이성을 관장하는 영역이 있는데 전자는 편도체, 후자는 전 전두엽이다. 감정을 말하거나 쓰게 하여 그 감정에 오래 머무르게 하면 편도체가 쉬려고 하고 전 전두엽이 일하기 시작한다. 감정이 무뎌지고 이성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정서중심치료는 이러한 뇌과학의 원리에 기반한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새로운 이론을 배웠으니 이제 다시 나의 첫 번째 내담자를 만날 차례였다.

나의 첫 내담자인 나는 요즘 학교에 가는 것이 재미가 없었다.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이 무기력 뒤에 숨어있는 나의 1차 정서를 찾아 나서자.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수치심이 있었다. 과제나 발표에서 나의 무능력을 확인하고 난 후 내 안에 생겨난 그것은 분명 수치심이었다. 그리고 분노도 있었다. AI를 이용해서 그럴듯한 과제를 제출해 내는 것과 본인의 능력 안에서 가능한 수준으로 과제를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해 아무런 차등이 없으니, 아니 어쩌면 AI로 만들어 낸 과제에 더 후한 점수를 줄지도 모르니, AI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화가 났다.


이렇게 AI가 집어삼켜버린 나의 인지를 걱정하면서도... 수업에서 만난 케이스의 사례개념화를 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타인의 정서를 분석해 낸다는 일에 몹시 어려움을 느꼈는데,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서 지하철 안에서 AI에게 요청해 얻어낸 사례개념화는 정말 끝내줬다. 네가 없으면 정말 나는 어떻게 살겠니? AI의 도움 없이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시간, 나의 인지가 열일하는 시간이다. 인지적 재앙을 막기 위해서라도 글을 계속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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