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물듦과 교차

영화 <밀양>

by 낮별

영화 속 주인공 신애는 아들 준이가 납치되고 난 후 절망에 빠져 소파에 누워 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자는 척 낮게 코를 골기 시작한다. 아빠가 그리울 때 준이가 아빠를 흉내 냈던 모습을 신애가 다시 흉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이 내게 타인과 세계에 대한 사유를 불러일으켰다.


인간은 각자 고유한 현상적 장을 살아간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각자의 현상적 장을 살아가므로 완벽하게 공유할 수 없다. 하지만 관계를 통해 서로에게 깊이 물들면 다른 사람의 세상과 나의 세상이 만나기도 하고 교차하기도 하는데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그 사람의 흉내를 내는 순간이 어쩌면 타인에게 완벽하게 빙의되는 순간으로 볼 수 있다.


준이가 아빠의 흉내를 낸 것은 아빠라는 부재하지만 강력한 존재를 자신의 세계 안에서 재구성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아빠의 습관, 목소리, 태도를 흉내 내며 잠시 아빠의 현상적 장에 발을 디딘 것, 그렇게 아빠를 그리워한 것이다.


신애는 아빠를 흉내 내는 준이를 다시 흉내 내면서 신애의 마음에는 두 겹의 빙의가 일어난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준이의 그 사랑스러운 세계로, 동시에 아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남편의 세계로의 빙의이다. ‘나’와 ‘너’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순간, 신애에게는 경계가 흐려질 만큼 가까운 이의 지지와 사랑이 필요했다. 그 순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고 그 두 사람의 세상과 만나고, 그들의 부재를 재확인하고, 결국 굵은 눈물 한줄기를 흘리고 만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인간이 각자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간다지만 관계를 통해 서로에게 물들고 교차하는 순간이 있어서 삶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누구의 삶에 물들고, 누구의 삶에 물들이는지를 생각하며, 나의 삶과 교차하는 소중한 이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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