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리는 과거의 비극적 사고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인물이다. 그는 여전히 죄책감과 자기혐오 속에서 살아가며,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나 희망을 품지 못한다. 그의 존재는 마치 속죄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수도자와도 같다. 그는 단지 ‘살아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 리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찾아온다. 사랑하는 형의 죽음이다. 그는 장례를 주관하며,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장례식이라는 비극적 상황, 그리고 슬로 모션과 오페라 아리아가 어우러진 영화적 연출은 깊은 정서적 울림을 준다. 그러나 이 장면이 강렬한 이유는 단순히 미학적 장치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리의 내면적 고통’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혼한 전 아내 랜디가 남편을 동반하여 나타난 순간, 리의 시선은 몹시 불안정해 보였다. 저 어색한 만남 속 리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랜디와 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아주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위로, 원망, 염려 그리고 그리움까지 수많은 대화가 오고 간 느낌이 들었다.
리와 랜디, 두 사람은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견뎌왔다. 랜디는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갖고, 삶을 다시 시작했다. 반면 리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이 차이는 단순히 ‘사고의 책임’이라는 윤리적 문제 때문일까? 랜디 또한 아이들의 엄마로서 그 상실을 온전히 겪은 사람이다. 무릇 엄마란 그런 일을 겪고서는 제정신으로 살 수 없는 존재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삶을 이어갈 용기를 냈다. 리와 랜디의 대조는 죄책감의 무게와 회복 탄력성, 그리고 인간의 ‘삶을 지속하려는 힘’이 사람마다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하게 했다.
랜디는 기어이 살아내지만, 리는 겨우 견딘다.
그것이 리가 살아내는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