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그다드 카페>
바그다드 카페에는 현대사회에서 소외되고 단절된 사람들이 모여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척박한 환경속에서 살아내기 위해서는 브렌다처럼 다만 억세지거나 화가 루디 콕스처럼 세상일에 무관심한 채 자기 세계에 갇혀 살아야 한다. 그런 곳에 나타난 독일인 야스민의 존재는 사막 한가운데 갑자기 생겨난 오아시스처럼 귀하다.
사람들에게 브렌다의 아들이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는 소음에 불과했지만 야스민에게는 달랐다. 야스민이 귀 기울여 연주를 감상하자, 뚱땅대던 피아노 소음은 아름다운 연주로 바뀌었고, 소년의 표정은 금세 예술가의 표정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마법의 순간을 목격한 화가 루디 콕스의 눈에는 야스민이 세상 무엇보다 아름다운 피사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야스민의 진심 어린 감상은 어린 소년에게 ‘내 행위는 타인에게 가치 있는 일이며,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갖도록 해준다. 야스민의 알아봄, 야스민의 순수하고 진실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루디 콕스의 알아봄.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은 상호적이다. 세 사람이 주고받은 알아봄을 알아본 나 역시 그 순간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야스민이 바그다드 카페에 몰고 온 변화는 실로 마법과도 같았다. 그 거칠던 브렌다를 웃고 노래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떠났던 브렌다의 남편이 돌아와 화해를 하고, 루디 콕스는 사랑에 빠져 야스민에게 청혼하는 등 마법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펼쳐졌지만, 내게는 이 장면, 서로를 알아봄으로써 세 사람의 행복이 절정에 달하던 그 순간의 마법이 가장 강력했다. 그 마법이 내게도 이어졌기에...
독일인인 야스민과 언어적 소통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관계에 있어서 대화보다는 ‘알아봄’, ‘진정성 있는 지지’가 더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엄마로서도, 상담자로서도 야스민처럼만 하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써두고 생각해 보니 야스민처럼 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적어도 야스민을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