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터울, 외동 둘을 키우는 이야기
"크리스마스, 방학, 형아 이렇게 세 단어를 넣어서 문장 만들기를 해봐.” 아이와 종종 이런 놀이를 한다. 맥락 없는 단어들을 던져놓고 맥락 있게 문장을 만들어보기. 가끔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내면 “우와! 대박!” 과장된 반응을 보여주면 아이의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듯 우쭐해진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곧 방학이 된다는 얘기고, 방학이 되면 형아가 군대에서 휴가 나온다.” 아이의 문장에 이미 크리스마스가 된 듯, 방학이 된 듯, 형아가 휴가 나온 듯 즐거운 기분이 들어 우리 모자는 함께 함박웃음을 지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는 여전히 산타 신봉자다. 이젠 산타의 진실을 알 법도 한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여전히 설레발을 친다. “올해도 산타 할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포켓몬 카드를 선물해 주시겠지?” 녀석이 다 알고서는 엄마 들으라는 듯 말하는 걸 보니 진실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포켓몬 카드 같은 값만 비싸면서 무용해 보이는 것에 저토록 집착하는 것을 보니 심보가 뒤틀렸던 것 같다. “야, 산타가 어딨어? 산타는 엄마야. 엄마가 그동안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선물 사서 준거야. 너 알면서 왜 모르는 척해?”
나의 폭로 끝에 아이는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며 울기 시작했다. “엉엉, 엄마 나빠! 엄마는 동심 파괴자야!” 울음은 쉽사리 그치지 않아서, 나는 어쩔 줄 몰라 쩔쩔맸다. 겨우 한다는 말이 “왜 몰랐던 것처럼 그러는 거야?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한 거잖아?” “몰랐단 말이야. 진짜 몰랐단 말이야. 엉엉.” 아이는 하늘이 무너진 듯 온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다.
내가 어렸을 때, 산타는 내가 사는 시골까지는 단 한 번도 온 적 없었기에 나는 산타를 믿지 않았다. 산타 때문에 울어 본 적도 없고, 산타 때문에 울음을 그친 적도 없다. 내 말에 아이가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을 우는 걸 보면서, 나 역시 엄마의 말 한마디에 그렇게 섧게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내게 “엄마가 사실은 너를 낳은 게 아니라, 저기, 서천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단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생각해 보면 엄마의 표정이나 말투만 봐도 그건 그냥 웃으라고 한 농담이었는데,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당황한 엄마가 농담이라고, 거짓말이라고 아무리 달래도 나는 쉽게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생각은 세상을 다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게 했다. 나중에 엄마가 된 나도 가끔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장난을 쳐봤는데, 두 녀석 다 이런 말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선언보다 산타가 없다는 선언이 더 충격적이란 말인가?
아이의 반응이 예상보다 격해서 아무리 달래도 쉽사리 진정되질 않았다. 그럴 때는 혼을 내도 달래도 소용없다는 걸 아니까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 나는 거실에서 책을 읽으며 ‘이게 저렇게 울 일인가?’ 의아해했다. 한참을 제 방에서 꺽꺽대며 울더니 차차 울음이 잦아들었다. 언제 울었냐는 듯 말간 얼굴로 나와서는 대뜸 말했다. “엄마, 나도 울고 난리 피운 거 사과할 테니 엄마도 동심 파괴한 거 사과해.” 딱히 내가 사과할 일은 없는 것 같은데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서로 사과하고 화해했다. 나의 엄마는 정말 거짓말을 했고, 나는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
아이 인생에서 4학년 겨울을 산타가 ‘펑!’하고 사라진 때로 기억하게 되려나? 엄마의 갑작스러운 폭로가 12월의 기대와 설렘을 와장창 깨트린 인생 최악의 순간 중 하나로 기억하게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미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차피 한 번은 겪었어야 할 충격이다. 아이는 눈치를 챘더라도 절대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눈치를 챘을 텐데, 모른 척하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산타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진실이 이렇게 불편한 법이다. 하지만 아이는 점점 자라고, 언제까지나 아름답기만 한 크리스마스의 마법 속에서 살 수는 없다. 이 또한 피할 수 없는 성장통이다. 나는 이로써 큰 애 10년, 작은 애 10년 합해서 20년의 위장 산타 역에서 해방되었다. 아이가 원하는 선물을 산타에게 알려주고, 산타 대신 미리 선물을 주문해 놓고, 산타체(?)로 카드를 쓰고, 몰래 포장해서 꼭꼭 숨겨 두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아이 머리맡에 몰래 가져다 놓고, 혹은 같이 잠들어버려 크리스마스 아침에 화들짝 놀라 들킬까 불안 불안해하며 선물을 가져다 놓는 그런 쇼를 이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이젠 엄마로서 선물을 준비할게.
하루쯤 지나고 뒤틀렸던 내 심보도 제자리로 돌아오고, 격렬하게 슬퍼했던 아이의 마음도 평온을 되찾았을 때 다시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정말 산타를 믿었니?”
“응”
“산타는 있어. 산타가 너무 바빠서 세상의 부모들이 산타 역할을 대신해 주기로 한 거니까. 산타가 없는 건 아니야.”
“맞아, 산타는 핀란드에 있다고 나도 들었어.”
산타가 오지 않아도 크리스마스는 즐거운 날,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길고 긴 겨울 방학에 들어갈 테고, 방학이 되면 곧 형아가 두 번째 휴가를 받아 집에 올 거야. 이렇게 즐거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겨울이니까 신나지 않니?
“산타 할아버지, 바쁘실 텐데 이제 저희 집에는 안 오셔도 됩니다.”
불과 3년 전, 우리 집 둘째는 이렇게 어린이였다. 지금은 아주 과묵하고 시크한 중1이 되었다. 산타가 오지 않은 이후로 그렇게 돼 버렸다. 산타 대신 그분이 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