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아빠와 너네 엄마아빠

11년 터울, 외동 둘을 키우는 이야기

by 낮별

큰 아이는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를 제법 잘했다. 그렇지만 수학, 과학이 선행이 되어 있지 않아 이과를 선택하기엔 자신이 없다며 문과를 선택했다. 전교권을 유지하며 학교장 추천 전형을 얻어냈고, 문과에서 비교적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한다는 경제학과로 결정했다.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상태에서 단지 성적만 고려하고 적성이나 흥미는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래도 학교에 다니며 배우다 보면 잘 적응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코로나 학번인 20학번이었는데, 다들 알다시피 20년과 21년 2년을 온라인수업으로 진행했다. 학교는 급하게 온라인 강의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혼비백산이었고, 그렇게 대충 구축해 만든 시스템 안에서 아이는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아이가 틀어놓은 강의를 얼핏 보기만 해도 온라인 강의 상태는 형편없었다. 강의 내용은 뭐라 판단하기 힘들지만 카메라 구도도 안 맞고, 사운드도 그렇고 내가 나중에 들었던 방송대 강의와 비교해 봐도 한참 떨어졌다. 그러니 아이는 강의를 틀어놓고 딴짓하는 일이 허다했다. 2년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학교 성적은 엉망이었고, 아이는 더는 버티기 힘들다며 군으로 도망쳤다. 당연하게도 전공 공부에 전혀 흥미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군에 가 있는 동안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전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건축분야의 일이 하고 싶다고 했다. 제대하고 복학하면서 건축을 이중전공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2년 동안 경제와 건축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나름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처음 들어보는 공대 수업에 적응하느라 좌절하기도 했지만 틈틈이 학회 활동과 저소득층 집수리 봉사 활동도 겸하며 지난 2년을 불태웠다. 주전공은 제쳐두고 이중전공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내심 걱정이 많았다. 죽도 밥도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힘은 들지만 재밌다고 했다. 아이를 믿어보기로 하고 응원하고 있다. 더 필요하면 대학원이라도 가라고, 아니면 유학이라도. 이십 대는 그래도 된다고... 그렇게 헤매도 된다고. 내가 못 받았던 이십 대의 지지를 나는 맘껏 해주고 싶었다.


어느 날, 큰 아이가 중1 동생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야, 너는 빨리 네가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서 진로 잘 결정해. 형처럼 뒷북치지 말고." 꿈이나 진로에는 아무 생각이 없는 동생이 역시나 아무 생각 없이 "그런 거 생각하기 싫어"라고 대답하자 큰 애가 말했다. "우리 엄마아빠는 젊기라도 해서 형아 지금까지 학비도 용돈도 다 지원해 주시지만, 너네 엄마아빠는 늙어서 너한테 그렇게 못 해주실 거야. 그러니까 빨리 네 살길 찾는 게 좋을 거야." 웃자고 한 말이지만 팩폭도 이런 팩폭이 없다 싶어 씁쓸하게 듣고 있었는데, 작은 아이가 눈이 동그래지며 하는 말이 "형아는 다른 엄마아빠가 키워줬어?" 듣고 있던 우리 가족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이 바보야, 말귀를 못 알아듣냐?" 면박을 주며 "젊은 우리 엄마아빠"와 "늙은 너네 엄마아빠"는 실은 같은 엄마아빠라는 걸 알려줬다. "형 친구 중에 J형 알지? J형은 누나랑 여섯 살 차이 밖에 안 나는데 누나는 편안하게 대학 생활 했지만 아버지 은퇴하시고 J형은 주말마다 결혼식장에서 접시 나르면서 불쌍하게 학교 다니고 있어. 여섯 살 차이인데도 그런데 너랑 나는 자그마치 열한 살 차이잖아. 너는 더 심각하다고. 그러니까 헤매지 말고 빨리 너 살길 찾아." 그런 얘기 끝에 우리는 모두 웃었지만, 그 얘기가 내내 잊히지 않았다.


큰 아이에게 "나중에 우리가 힘들어지면 동생은 네가 챙겨야지"라는 말을 하면서도 이런 말을 해도 되는가 내심 뜨끔했다. 이렇게 지나가는 말로라도 스치듯 던져놓은 말이 아이에게 평생의 부담이 될까 싶기도 했다. 아이는 말로는 "당연하지"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고, 아이에게 그래야 하는 의무가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작은 아이가 학업을 마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남편과 내가 건재하게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들었다. 형의 말에 숨어있는 유머와 은유도 못 알아듣는 우리 막내가 다 클 때까지는... 형의 팩폭 조언에 정신이 번쩍 든 것일까? 작은 아이는 요즘 책꽂이에서 유시민 작가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책 제목은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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