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오역하는 말들>
토요일 책 모임이 있었다. 이번 함께한 책은 번역가 황석희의 <오역하는 말들>이었다. 3주 전쯤에 사자마자 바로 읽어버렸더니 막상 책 모임에 가려고 책을 펼쳐 드니 처음 읽는 책처럼 새로웠다. 흥미로운 번역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은 읽을 때는 무척 재미있었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유일한 꼭지는 '열 살짜리 석희는 상상이나 했을까'였다. 철길을 따라 있는 담벼락 길에 있던 피아노 학원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열 살짜리 아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싶어도 다닐 수가 없어서 친구를 부러워하던 아이, 몰래 건반을 눌러보던 아이, 쫓겨나 담벼락에 기대앉아 친구를 기다리며 피아노 소리를 듣던 아이. 그 풍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았을 뿐이다.
모임에 나가 사람들을 기다리며 다시 책을 펼쳤다. 작가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서 눈물이 고였다. '엄마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엄마의 말을 번역하지 않기로'. 작가의 엄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나의 엄마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어도 내 얘기로 읽히는 글에 마음은 동요된다.
'Come home with me'를 '집에 가요'가 아니라 '결혼해요'라고 번역했다가 오역이라고 지적받은 이야기가 있다. 4음절 번역이 필요했는데 '집에 가요'는 '나와 함께 집에 가자'라는 의미일 수도, '당신 집에 가라'라는 의미일 수도 있어서 고민 끝에 극의 맥락을 살펴 '결혼해요'라고 번역했다고 한다.
지난 주말, 큰 아이와 대화 중에 두 번이나 서로의 말을 오역해 버렸다.
"일요일에는 OO누나 결혼식 가야 해."
"그렇게 가까워?"
"당연하지, 가서 축하해줘야 하는 사이지."
"아니, 그 말이 아니고 결혼식이 이번 주 일요일로 그렇게 임박했냐는 말이지."
"아, 결혼식에 가야 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냐고 묻는 줄..."
큰 아이가 나를 모임 장소에 데려다줬다. 나를 내려놓고 1차선으로 끼어들어가 유턴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아이가 급하게 차선을 변경하느라 뒤에서 오는 차가 빵빵빵 경적을 울렸다. 인도에 서서 그걸 보고 있자니 걱정스러워서 잠시 후, 그러니까 아이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될 시간을 준 후에 전화를 했다.
"너 돌았어?"
"아, 미안. 놀랐어?"
"아니, 너 유턴했냐고?"
내가 '너 돌았어?' 하고 물은 건 '유턴했냐'는 질문이었는데 아이는 '너 미쳤어?'로 알아 들었다.
일상에서 이러한 오역이 얼마나 많을까, 끝내 해명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오역은 또 얼마나 많을까? 힐난하는 어투가 아니었음에도 힐난으로 들었는데 어투가 느껴지지 않는 글에서의 오역은 또 얼마나 심할까?
그리고, 드디어 시작되었다. 내 지인들이 혼주가 되기 시작했다. 한동안 슬픈 일에만 불려 다녔다. 이제 기쁜 일이 부른다. 삼십 대에 만나 이십여 년을 함께 웃고 울었다. 곱게 화장을 하고 한복을 차려입은 언니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신부도 안 울고, 혼주도 안 우는데 나는 좀 울었다. 주책이다. 혹여나 내 눈물로 인해 내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고 오역되지 않길 바란다. 그냥 언니 집에 커피 마시러 갈 때 마주쳤던 어딘지 다크하고 뚱했던 사춘기 여자 아이가 저렇게 밝게 잘 커서 제 식구를 꼭 빼닮은 신랑과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보니, 그 남자 하나 믿고 생판 모르는 남들과 가족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