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두 번째 시 <첫 수업>
- 낮별
그 밤은 고통스러웠지, 다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어
혼자서 고스란히 그 긴긴밤을 보내고
아침 9시 15분 마침내 첫 아이를 만났을 때
내 속에서 나온 그 작았던 아이가 어느새 나보다 훌쩍 커져
내가 이 집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되고 말았을 때
그렇고 그런 300일쯤 되는 날들이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고
조금은 특별했던 65일만 남아서
매년 연말이면 '벌써 한 해가 갔구나' 장탄식하고야 말 때
홧김에 내뱉은 말은 바보 같은 말이기 쉽다는 걸 알고도
또 참지 못하고 기어이 뾰족한 화살을 날려 보내고 후회할 때
시야를 어지럽게 하는 비문증처럼
어떤 불편함은 절대 없앨 수 없어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는 걸 인정해 버렸을 때
어느 날 문득, "엄마, 어디야?" 묻는 아들의 전화에
나는 이 말을 못 해본 지 6년이 훌쩍 지났음을 깨달았을 때
계절은 꽃처럼 다시 돌아오지만
결코 돌아오지 않은 어떤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통곡한다고 제일 많이 슬픈 것도
울지 않는다고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님을 깨달았던 장례식장에서
나도 모르게
나의 수업은 시작되었던 것
그 모든 시간이 다
나의 첫 수업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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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중 시인의 <첫 수업>을 읽고 따라 쓴 시
요즘 문학상담 특강을 듣고 있다.
시를 읽고, 그 시를 따라 써보는 수업이다.
서로의 호칭은 시인님이다.
첫 수업에서는 간질거리더니 두 번째 수업이 되니 당연하다는 듯 말하고 듣는다.
시인이 별 건가? 시를 쓰면 시인이지.
제목이 <첫 수업>이라, 원래 시가 그랬어서,
시인님들의 시가 상실과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대단한 성취나 기쁨이 아닌 상실, 고통, 아픔에서 뭔가를 배우며 사는구나 싶다.
죽음이라는 한계가 있어서 삶의 의미가 있듯.
내 시도 마찬가지였다.
새벽에 쓴 시가 후회스러워 낮에 썼는데...
내 시를 읽고 슬프다고들 했다.
울 뻔했다고 했다.
정작 쓰는 나는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내 속에 있던 것을 그저 꺼내놓은 것뿐이니까.
시인님이 쓴 드물게 밝은 시는 내 마음도 밝게 했다.
다른 사람을 슬프게 하는 시는 쓰지 말아야겠다.
엄마 얘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쉰 넘어 혼자만 엄마가 없는 것도 아닌데 유난이다.
내밀한 마음들이 오가서일까?
이상하게 불편하고 저릿한 시간이었다.
상담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저항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치유의 시작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