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어울리지 않는 내가 쓴 시 <어울린다>
글이란 게 참 이상하다.
시 한 편을 적었을 뿐인데, 그 글 안에 그 사람이 있었다.
일상의 고단함을 견뎌내며 그럼에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
가급적 밝고 긍정적인 면만 보며 그렇게 살고자 애쓰는 사람,
적당한 속도의 삶, 적당히 단단하고 적당히 말랑함을 추구하는 사람,
열심히, 성실하게 한낮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
한낮을 살아내고 나서 저녁노을의 감동을 만끽하고 있는 사람,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한 일상,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
그러니까 자기는 다..... 괜찮은 척 살아가는 사람들...
글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태도가 있었다.
내 글 안에도 어쩔 수 없이 나의 마음과 태도가 있었을 것이다.
내 글에서 자기 연민이, 불안이, 고충이, 외로움이, 소통에 대한 갈망이 보인다고 했다.
그것들을 들키자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새벽에는 시를 쓰면 안 되겠어요."
나도 괜찮은 척, 적당한 수준에서의 마음을 꺼내놓을 걸 그랬다.
그게 후회되고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절대 감춰지지 않아.
남들은 이 수업이 몹시 재미있다는데, 나는 힘겨웠다.
남들과 이야기 나누기에는 다소 내밀했다.
농도 조절에 실패했다.
이 수업에서 주로 시를 읽고, 시를 쓴다고 했다.
어쩌지? 시를 써야 한다니...
미리 알았다면 아마 참여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새벽 전전긍긍 끝에 이 시를 쓴 내심 내가 기특했다.
시는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내가
써두고 보니 얼추 시가 되었길래...
시를 써보며 느낀 것은
시는 쓰는 사람에게 가장 큰 의미가 있고,
그래서 시를 쓰는 사람은 그 시의 가장 큰 수혜자라는 사실이다.
공유하며 부끄러웠지만 쓰는 동안은 행복했다.
남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화자의 마음 따위를 찾는 문제는 정말 문제다.
어울린다*
너에게는 말과 말 사이 잠깐의 공백이 어울린다
바삐 너를 탐색하는 시간
너에게는 오래전 책갈피에 꽂아두고 잊었던 말린 단풍잎이 어울린다
2015년 11월 5일, 어디선가
너에게는 진중한 소설가의 말장난이 어울린다
“어떤 옳은 말은 말해지는 순간, 말해졌기 때문에 옳지 않은 것이 된다”**
너에게는 맑은 물 위에 번지는 한 방울의 파란 잉크가 어울린다
누구에게도 절대 감춰지지 않아
너에게는 텅 빈 월요일의 집안 풍경이 어울린다
번잡한 주말을 살아내느라 애썼으니
너에게는 수북이 쌓아놓은 설거지 더미가 어울린다
이제 뽀드득뽀드득 맑아지는 기쁨을 만끽할 차례야
너에게는 홀로 깨어있는 새벽 두 시가 어울린다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도 찾지 않는
너에게는 고요하지만 격렬한 일상이 어울린다
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 씨처럼***
너에게는 부치지 못한 편지가 어울린다
수신인을 찾을 수 없어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낮에 한 말이 시끄러워 잠 못 이루는 새벽 두 시
그러니 나에게 편지를 써
내가 너를 읽어 줄 테니
어떤 말은 써지는 순간, 써졌기 때문에 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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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은영의 시 <어울린다>를 읽고 따라 써 본 시
**이승우의 소설 <지상의 노래>에서
*** 짐 자무쉬의 영화 <패터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