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시 <낮별氏의 가방>
-낮별
몇 번인가 버리려고 했던 오래된 에코백이 있다.
돈 주고 산 것들은 잘도 내다 버리면서
어디선가 덤으로 얻은 가방에는 무슨 미련이 남아서.
흔하디 흔한 아이보리 색 캔버스 천 위에
셰익스피어 니체 클림트 푸치니 페소아의 이름이 빨갛게 새겨져 있다.
햇살과 바람과 꽃향기가 손짓하는 날,
읽던 책 한 권과 뜨겁거나 차가운 커피를 담아 천변 산책에 나서곤 했다.
그 많았던 걸음들,
그 많았던 이야기들,
가장 낮은 길에서 느린 속도로 풍화되어 가는
흐물거림과 가벼움을 사랑했다.
숲 속 벤치에 앉아 커피와 글을 마시고,
가방 안에 햇살과 바람과 들꽃 향기를 실어왔다.
햇살이 눈부셔 아무도 우러러보지 않는 한낮에도
제 자리를 지키며 빛을 숨기는 낮별처럼,
낮별氏의 가방은 보이지 않는
시간의 숨결을 담고 있다.
눈부시게 밝았던 아이보리는 오래된 책처럼 바래졌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숨결은 미련스러운 미련이 되어
낮별氏는 작년에도 가방을 버리지 못했다.
어쩌면 가방을 멘 것이 아니라
그 다정한 것들이 어깨동무를 해 준 것이리라.
문학상담 수업을 듣기 하루 전, 교수님께서 다음 수업의 촉진시이면서 마중시가 될 작품을 단톡방에 올려주신다. 미리 시를 충분히 읽고 자신의 시를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수요일 한낮에 올라온 천서봉 시인의 <서봉氏의 가방>을 읽고 시를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내게 그 시는 어려웠다. 뭔가 알듯 말듯 하면서도 시인 자신이 아니고서는 그 시를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은 모호함이 느껴졌다. 그저 실존에 몸부림치는 지식인의 고뇌 같은 것이 느껴질 뿐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이 시를 읽고 나의 시를 써야 한다니 난감함이 몰려왔다.
밤이 되자, 시인의 시를 잊기로 했다. 제목만 빌렸다. <낮별氏의 가방>
그러기로 마음먹고 나니 마음은 나의 아주 오래되어 낡은 에코백에 머물렀고,
그것과 함께한 많은 시간과 장소로 돌아갔다.
희한한 경험이었다.
자려고 눈을 감고 누웠는데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았다.
끝없이 장면들이 펼쳐졌고, 단어들이 춤을 추었다.
떠오르는 단상들을 메모하느라 분주한 밤이었다.
잠은 설쳤지만 단언컨대, 행복한 시간이었다.
시로 표현하고자 하는 언어가 나의 마음을 움직이고, 모든 감각을 깨웠다.
이 시를 쓰면서, 대단할 것 없는 나의 일상이 나를 살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불안하고 위태로운 삶에서 말이다.
시 쓰기의 매력을 이제야 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