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담, 미리 써둔 시 vs. 즉흥시

<안경을 쓰는 사람>, <애쓴 사람>

by 낮별



시를 읽지 않고 살아온 나는 박상순이라는 시인의 이름도 처음 들어봤고,

이런 시도 처음 읽어보았다.

처음 촉진시를 받아 들고는 '이게 뭐야?' 어리둥절했다.

이 시를 읽고 다음 시간에 써야 하는 시는 '____를 쓴 사람'이었다.

'뭘 해야 하는 거지?'

시를 대충 읽어보니 와닿지 않았다.

다시 천천히 소리 내어 읽었다.

화자의 가난, 외로움, 소외, 분노, 슬픔, 체념 같은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와닿기 시작했다.


시인의 상념에서 내 과거의 우울과 슬픔을 구태여 건져 올리긴 싫었다.

그래서 시인의 시를 잊고 나는 시인의 '가마니를 쓴 사람'에서 '쓴'(wearing)이 아닌 다른 '쓴'을 가지고 시를 생각해 두었다. 그랬는데...


수업이 시작되자 교수님께서는 박상순의 시처럼 그림을 포함시켜서 자신의 결핍, 혹은 감추고 싶은 순간을 시로 그려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째깍째깍 제한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머리가 하얘졌다. 그림을 그려 넣으라고?

결핍, 감추고 싶은 순간.... 시가 우울해지겠어.

우울한 시는 쓰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지 말고, 지금의 결핍을 찾아보자.

그렇게 완성한 시다.




애쓴 사람

-낮별


사랑받으려고

사랑을 주려고 늘 애를 썼다.


투박하고 거칠어서 받고도 모르기도 했고

집요하고 서툴러서 주고도 원망을 들었다.


어려서는 뭘 몰랐고,

어른이어도 여전히 몰라서 그저 애만 썼다.


애를 쓰다 인생이 쓰면

때로는 떼를 쓰기도 했다.

떼를 쓰다 지쳐 울고 있을 때,

등에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볕이

그분의 손길 같았다.


애만 쓰다 떠난 사람.

애(愛)만 쓰다 떠난 사람.


내가 먹고 자란 것,

자라며 키운 것,

키워서 쓴 것,

그것은 모두 사랑이었음을.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애를 쓴다.

사랑을 쓴다.




이건 미리 써둔 시다. '쓰다'라는 말은 우리말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촉진시의 wearing이 아니라 using, striving, bitter, writing의 의미를 골고루 집어넣어 시를 썼다.

비록 수업에서는 공개하지 못했지만 브런치에 남겨본다.


요즘 페니베이커와 에반스의 <표현적 글쓰기>를 읽고 있다. 글쓰기의 치료효과를 경험적으로 입증해 낸 책인데 부정적 감정이라고 하더라도 긍정적 표현으로 나타냈을 때 더 유익한 결과를 얻어냈다고 한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렇다. 부정적 감정만 쏟아놓기보다는 애써 긍정적 감정으로 마무리했을 때 만남에 대해, 관계에 대해 회의가 생기지 않는다. 여러모로 애쓰고 있다.


문학 상담 프로그램의 절반이 지나갔다. 시를 읽고, 시를 써야 한다는 첫 시간의 당황스러움을 지나 이젠 제법 이 시간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 마음을 시로 표현하는 색다른 경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다채로운 시로 나눠주는 이야기들을 즐기고 있다. 글에 대한 판단은 제쳐두고 쓴 사람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려고 애를 쓰고, 격려와 위로의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그런 과정에서 이 수업에 처음 만난 사람들임에도 조금 더 빠른 속도로 가까이 알아가고 있다. '서로의 시를 아는 사이'란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월요일 상담 공개사례발표가 있어서 참관하러 갔다가 발표자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자 서로 고개를 갸웃했다. 곧 '아!' 하는 깨달음으로 반갑게 인사했다. 문학상담 시간에 매주 줌으로 만나온 선생님이었다. 쉬는 시간에 만나서 손을 잡고 엄청 반가워했다. "이렇게 얼굴 보니 너무 반갑네요! 줌 화면으로 보다가 실제로 보니 긴가민가 했어요." 정말 그랬다. 가늘지만 튼튼한 연결, 이게 많이 필요했다.

소수의 누군가에게 마음을 너무 몰아서 주지 않기.

하고 있는 일에는 마음을 쏟기.


이런 걸 절실히 느끼면서 첫 학기 말에 느꼈던 불안과 우울이 거의 괜찮아졌다.

시간이 약인지, 자기 돌봄이 통했는지, 문학상담 시간이 나를 치유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방학중이어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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