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감자 감자

비 비 비

by 낮별


해마다 이맘때면 감자 풍년이다. 올해도 형님네서 농사지은 감자 10킬로 박스가 도착했다. 김치 냉장고 빈칸에 쟁여놔도 자리가 부족해서 열심히 볶고 찌고 튀겨서 날마다 감자 파티를 해대고 있다. 지난번,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헤어질 때 종이 가방 하나를 건네주길래 얼떨결에 받아보니 감자가 가득 들어있었다. 차마 우리 집에도 감자가 많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또 며칠 뒤 인근에 사는 아는 동생이 잠깐 보자고 했다. 갑자기 뭔 일 있냐고 물었더니 줄 게 있단다. 뭘 주려고? 별거 아니라며 대답을 하지 않으려는 걸 캐물었더니 감자라고 했다. 우리 집도 감자 많아. 언니, 우리 감자는 강원도 감자라고. 감자에도 출신이 중요하구나. 감자의 최고 출신성분은 강원도라는 것이다. 우리 감자는 경기도 감자지만 처치 곤란이니 각자 처리하자고 했다. 작년에 내가 감자를 나누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마다했었다. 집에 감자가 널렸으니 필요 없다며. 그래서 올해는 아무한테도 권하지 않고 셀프 처리 중이었다. 아무튼 감자 풍년이다.


햇감자가 어찌나 맛있는지 남편과 나는 감자만 쪄서 김치 얹어 먹어도 주말 아침 한 끼는 뚝딱 해결이다. 문제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쪄놓은 감자 앞에 인상을 쓰며 손도 대질 않았다. 큰 아빠가 힘들게 농사지어 보낸 건데 먹어보라고 해도 찐 감자는 먹기 싫다고 했다. 그래? 그렇다면 튀기고 부친다. 주말 내내 감자전, 감자튀김을 만들었다. 애들이 냄새를 맡고 "또 감자야?" 소리가 나올 지경이 되었다. 애들은 투덜대고, 나는 감사히 그냥 먹으라며 잔소리하며 감자 때문에 서로를 긁어댔다. 남편은 "저 자식들이 배가 불러서 그래. 못 먹고살던 시절을 겪어보질 않아서"라며, 자기는 무슨 못 먹고살던 시절을 겪은 냥 말했다.

뭐든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넘치는 것도 문제다. 비도 적당히 올 때는 그렇게 운치 있고 좋았는데, 지난 며칠 전국을 강타한 폭우에 삶의 터전을 잃고 목숨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뉴스가 이어지고 있으니 비소식이 반갑지 않다. 지난봄, 경상도를 초토화시켜 놓았던 산불 사태 때, 그렇게 기다렸던 비다. 기후변화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최고, 최악을 갱신하는 중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불안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이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무기력해진다.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는 이런 이유로 죽기로 결심했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세상이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적게나마 호우피해 이웃 돕기 성금을 기부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감자는 한 톨도 썩혀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먹어 치울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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