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네가 하니?

네가 뭘 입었는지 아무도 관심 없다고요!

by 낮별


어제 오후부터 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상태가 양호해진 큰 아이와 함께 쇼핑을 다녀왔다. 곧 조카 결혼식이 있는데, 입고 갈 착장이 여의치 않아서였다. 대학 졸업반이지만 아직까지 정장 한 벌 맞춰주지 않았다. 어디 면접이라도 볼 상황이 되면 그때서야 허겁지겁 장만하겠지. 사촌 누나 결혼식에 정장까지 빼입고 가는 것도 좀 오버인 것 같아서 깨끗한 면바지와 긴팔 셔츠 하나 사줬다. 교복과 운동복으로 살아가고 있는 작은 아이를 위해서 깔끔한 티셔츠 하나 사주고, 남편을 위해서도 출퇴근용 여름 티셔츠 세 장을 샀다. 그리고 큰맘 먹고 큰 아이를 위해 로퍼를 하나 장만해 줬다. 지금은 아니어도 앞으로 신을 일이 점점 많아질 테니.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그 로퍼를 현관에다 내놨다. 남편이 밤늦게 술을 한잔하고 들어와서는 잔뜩 상기된 채 물었다. "저 구두 내 거야? 사이즈가 큰데?" 하고 물었다. 새 구두를 발견하고 자기 건가 싶어서 신어봤다고 한다. "당신이 신데렐라야?" 신데렐라 언니처럼 자기 것이 아닌 구두에 실망한 남편을 다독였다. "당신 건 같이 가서 사자. 신어 봐야지?" 대신 남편 몫으로 사 온 티셔츠 세 장을 보여주니 신나서 입어보고는 낡은 티셔츠들을 버려야겠다면서 드레스룸에 들어가더니 열 장 정도를 꺼내놨다. 술 취해서 막 아무거나 꺼내놓은 듯. 내가 아들 셋을 키운다. 세 남자가 자기 몫을 옷을 입어보며 패션쇼를 벌이는 걸 보면서 자본과 소비가 주는 행복을 느꼈다. 좀 귀엽다, 이 남자들.


내 건 미리 온라인 쇼핑으로 끝내 놨었다. 결혼식 같은 격식 있는 자리에, 특히나 이런 여름에, 마땅히 입을 옷이 없어서 내심 고민하다가 쿠팡 로켓배송으로 저렴한 것들로 사봤다. 영 별로면 반품시키려고 했는데 품질도 스타일도 그런대로 봐줄 만하여 그걸로 준비를 마쳤다. 큰 아이가 보더니 "외숙모 룩으로 굿!"이라며 인정해 주었다. 시누이가 다섯인 나는 수많은 아이들의 외숙모이다. 이 말인즉슨, 앞으로 참석해야 할 결혼식이 줄줄이라는 말이다. 축의금에 더해 가족들 의상 준비하느라 출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결혼식에서 주인공도 아닌 우리 가족에게 사람들이 별 신경도 쓰지 않을 텐데, 그걸 알면서도 이러는 걸 보면 우습기도 하다. '조명효과(spotlight effect)' 때문이다. 자신을 무대 위의 연예인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타인들에게 평가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남이 뭘 입고 오건 신경도 쓰지 않을 텐데, 그걸 알면서도 이런다. 너무 격식과 맞지 않아서 눈길을 끌지만 않으면 족한 걸 알면서도 이런다.


그냥 특별한 날, 그 핑계로 온 식구가 새 옷도 장만해 보고 기분 좋게 외출하는 거지 뭐.

그래야 나라 경제도 돌고.

뻥 뚫려버린 생활비를 그렇게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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