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양말

그리고 <유 퀴즈>

by 낮별


비가 무지막지하게 퍼붓는다. 밤새 천둥소리에 놀라 열 번도 넘게 깬 것 같다. 깜깜한 밤에 우르르 쾅쾅하는 소리가 연거푸 이어지는 걸 들으면서 지구멸망을 떠올렸다. 전쟁이 나도 모르고 잘 것 같은 작은 아이도 아침에 일어나서는 천둥소리에 잠을 설쳤다고 투덜거렸다. 등교시간에도 비는 억수같이 퍼부었다. 양말과 수건을 챙기고 맨발로 크록스를 신고 등교하라고 하니 양말을 신고 운동화를 신고 가겠다고 고집을 피워댔다.


작은 아이는 6월 말부터 하복 생활복을 입기 시작하더니 내게 흰 양말을 사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아이들이 알록달록 색깔 양말을 신고 다니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작은 아이의 양말은 모두 초록 파랑 연두 노랑 이런 색깔 양말을 신겼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한 번도 양말에 대한 불만을 말 한 적 없는데 갑자기 양말에 대한 컴플레인을 들으니 얼떨떨했다. "중학생이 이런 알록달록한 양말을 누가 신어? 다 흰 양말 신고 다닌다고" "남들 다 흰 양말 신으면 너만 튀고 좋잖아?" "난 튀기 싫다고!" 튀고 좋을 거라는 말은 마음에도 없는 말이다. 나는 튀는 거 딱 질색인 사람이니까. 역시 내 아들다웠다. 이젠 양말도 자기 취향을 고집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기분이 묘했다. 아니, 취향을 잃어버린 건가? 획일화, 그쪽이 맞겠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새하얀 새양말을 신고 운동화를 신고 등교했으니 돌아올 때 어떤 상태로 돌아올지는 그림이 그려진다. 써두고 보니 이건 '어제의 기억'이 아니라 '오늘 아침의 기억'이구나.



어제 뭘 했더라? 어제는 브런치에 글을 쓰는 데 제법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책을 읽었고, 일상적인 집안일을 했고, 아픈 큰 아이를 보살폈다. 아이의 컨디션은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 약을 먹지 않아도 고열로 치솟지 않지만 설사가 계속되고 있다. 월요일에 집에 오기 전 김밥을 먹었다는데, 요즘 김밥이 뉴스에서 악명이 자자하더니 혹시 식중독이 아닐까 의심한다. 전복죽과 삼계죽을 배달시켜서 온종일 죽만 먹여놨더니 한 밤중에 맵고 짠 음식이 너무너무 당긴다며 괴로워했다.


저녁을 먹고 쉬다가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보게 됐는데,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가 나와서 어린 시절 아픈 기억을 공개했다. 알쓸신잡 같은 프로그램으로 인지도를 얻었고 각종 매체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지식인이라 그에 대한 인상은 '좋은 집안에서 그늘 없이 잘 자란 지성인'이었다. 늘 밝았고 당당해 보였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아무 예고도 없이 "엄마가 나를 데리고 동반자살을 시도했었어요"라는 고백을 털어놓으니 나는 마치 습격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 왜 유 퀴즈 같은 밝고 희망찬 곳에서 자신의 가장 숨기고 싶은 어두운 과거를 고백하는가? 저녁을 먹고 편안하게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가벼운 예능이나 보자며, 뇌과학자 장동선이 나왔네? 재미있는 뇌과학 이야기를 하겠군 하며 무방비 상태로 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결국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좀 울었고, 그리고 그가 한 이야기에 너무 공감이 가서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내가 요즘 주로 생각하는 것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네."

분명한 건, 흥미롭게 듣고 돌아서면 잊어버릴 과학 이야기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을 이야기였다.

그의 고유한 이야기이므로.


그의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자꾸 엄마를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미움과 사랑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밉고 원망스러운데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

모순 같잖아요?라고 물었다.


어제 서랍 속에 작성해 놓은 이야기가 바로 이것에 관한 것이라서 나는 '이 타이밍 무엇?'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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