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요구하기
주말 동안 서울 자취방에 갔다가 월요일 저녁에 돌아온 큰 아이가 어제 아침 자고 일어나 나오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엄마, 나 좀 아픈 것 같은데?" 나이가 스물다섯이어도 자식이 아픈 것 같다는 말에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왜? 어떤데?" 머리가 아프고, 열도 나는 것 같다고 했다. 체온을 재보니 37.7 정도 미열이 있었다. 타이레놀 한 알 먹고는 한숨 더 자고 일어나 좀 나아졌다고 했다. 밥을 챙겨 먹여놓고 나는 마지막 충격파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도서관에 가서 상호대차 도서를 받아왔다.
낮동안 상태가 괜찮아 보였는데, 저녁 먹고 들어가서 온라인 과외를 끝내고 나온 아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춥다며 두꺼운 티셔츠를 꺼내 입고도 달달 떨기 시작했다. 테라플루 하나를 뜨거운 물에 타서 먹게 했더니 밤새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열이 내렸다. 잠들기 전까지도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새벽녘에 가서 이마를 짚어보고는 마음이 놓였다. 혼자 자취방에서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 몸 상태도 온전치 않는데, 다 큰 아들 상태도 좋지 않으니 심란했었다. 자려고 누워 한숨을 나도 모르게 내쉬었다. 남편이 "왜? 왜 한숨이야?"라며 내 손을 잡았다. 다 괜찮다는 듯 내 손을 잡고 어깨를 토닥여주는데 괜히 심통이 났다. 주말 라운딩에 이어 어제도 오후 라운딩을 다녀온 터라 마음은 이미 삐딱해져 있었다. 그래서 뾰족하게 반응했다.
"애가 아프니까 옛날 생각이 나네. 지금이야 애들도 많이 컸고, 나도 당신이 골프를 치건 뭘 하건 괜찮은데, 옛날에 애들 어렸을 때는 그렇게 밖으로 돌지 말았어야지. 나도 일하느라 힘든데도 애들 뒤치다꺼리는 내가 다했잖아. 당신은 어린애 없는 사람처럼 밖으로 나돌았고.",
"나 정도면 잘한 거지 뭘 그래? 그리고 자꾸 옛날 생각 좀 하지 마라. 난 기억도 안 난다."
우리 부부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나는 기억하고 있고, 그는 잊은 것.
여기서 내가 참지 못하고 들고일어나면 싸움이 되는 것이다.
내가 디테일하게 당신이 언제 어떻게 말했던 것을 캐묻기 시작하면 그는 코너에 몰려서 실컷 두들겨 맞다가, 급기야 참지 못하고 버럭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버럭을 참고 있을 내가 아니다. 이렇게 티격태격 싸우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런 경험 끝에 나는 배웠다. 적당히 치고 빠지기가 내 신상에도 좋다는 것. 완전히 잊지 않도록 가끔 떠올려주기만 해도 된다. 무심한 당신으로 인해 나의 많은 날이 외로웠다는 것을.
싸워봐야 피차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마음만 상할 대로 상하니, 상처뿐인 투쟁이다. 그래서 딱 여기에서 멈췄다. 그리고 나는 등 돌려 잠이 들었고, 남편은 저녁에 먹은 믹스커피를 핑계 대며 슬쩍 거실로 나가버렸다.
유튜브 쇼츠에서 우연히 한가인이 남편의 골프에 대해 말한 것을 보았다. "골프는 절대 안 돼요. 진짜 안 돼요. 골프는 한 번 나가면 하루 종일 밖에서 있어야 하잖아요? 애들 키우는 동안 골프는 절대 안 돼요. 연정훈 씨요? 골프 좋아하죠. 하지만 안 돼요. 일 년에 딱 네 번, 봄에 두 번 가을에 두 번만 허락해 줘요." 이 영상을 보고 아래 붙은 댓글을 보면서 '내가 보살이구나'했다. 이 이야기를 해주면서 큰 애에게 너는 골프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큰 아이의 대답이 "나도 한가인 같은 여자랑 결혼하면 골프 안 하지."
내가 한가인이 아니어서 보살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한가인처럼 "골프는 절대 안 돼요. 진짜 안 돼요"라고 강한 어조로 말할 수 없다는 자격지심에 쭈그러들었다.
일을 그만두고 육아와 살림을 전적으로 맡으면서 그 부분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밖에서 돈을 버는 당신은 당신 뜻대로 사시오. 그리고는 정말 덜 싸웠다.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었다.
내가 뭐라고 요구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골프도 일이라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았던 시간들이 쌓이니까...
나는 기억하고, 남편은 잊었다.
누군가는 기억하고 누군가는 잊으면
기억하는 누군가는 아프다.
당신 말대로 당신 정도면 잘한 거고, 이 정도면 괜찮게 살아가는 건데...
이제는 나도 당당하게 요구하며 살고 싶다. 한가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