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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행인 Oct 02. 2022

스물의 여름

스물의 여름이다. 나는 사회복지관에서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여름에 낡은 주공아파트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수십 인분의 도시락을 배달하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다. 그나마도 도시락을 받는 이들 중 절반은 얼굴을 보이기 싫어했고 (시위하듯 커다란 개를 문가에 묶어둔 이도 있었다), 나머지 절반에게서는 희미한 죽음의 냄새가 풍겼다. 그 정도로 늙고, 그 정도로 고독하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늙을 수 있을 정도로 운이 좋고, 혼자 남겨질 정도로 운이 나쁘다면 아마 나도 알게 되겠지. 건방지게 그런 생각을 해봤을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모두가 노인은 아니었고, 몸이 불편한 젊은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그중 한 분이 기억나는데, 어떤 장애였는지는 모르겠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관찰할 새가 없었던 탓이다. 경멸과 당혹과 연민을 모두 지운 얼굴은 어떤 것일까.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무례할 거 같으니. 하지만 내게 그런 감정들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해도, 적절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표정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를 알아챌 만큼의 친교를 쌓을 틈이 없었으니 오해를 피할 길이 없을 테고, 무엇보다 표정은 아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므로. 아무래도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얼굴은 내가 기억할 수 없으니 다행이다.


도시락 배달이 이렇게 덥고 씁쓸하고 당혹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혼자서 하는 일이라 얼마큼의 해방감도 있었고, 사무실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것보다야 성취감도 있었다. 여름 방학 중 두 달이 채 못 되는 기간으로 예정된 단기 아르바이트라, 제대로 된 일을 배울 기회는 없었다. 종이나 자르고 있던가, 괜한 짓을 해서 소리를 듣거나 하는 정도의. 지금 생각해 보니 대학생을 위한 (조금은 정치적인) 무슨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 것이라, 현장에서 반기지 않았겠구나 싶다. 반나절 짜리 알바에게 무슨 일을 가르칠까. 뭐라도 할 일을 만들어 줘야 하고, 서류 한 장이라도 더 써야 했을 테니 오히려 성가셨겠지.


스물은 그런 걸 모르는 나이다. 스물의 나는 낯 가리고 숯기없어, 사무실 사람들 틈바구니에 녹아들지 못했다. 나름대로 고심해서, 마지막 날에 꽤 비싼 초콜릿까지 인사랍시고 사들고 갔었는데 별 고맙단 얘기를 못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조금 서운했지만 그럴만한 일이다. 이미 애정과 도움을 갈구하는, 외롭고, 괴로운 이들로 둘러 쌓인 사회복지사들이, 붙임성 없는 단기 알바한테까지 신경을 써야겠는가. 초콜릿 정도로 격무의 피로와 감정의 소진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어쨌거나 우리에겐 퇴근이 있고, 내 퇴근 시간은 두 시였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서, 해가 가장 높은 시간에 마시는 맥주는 맛있었다. 그때 우리 가족은, 이제 갓 한 살이 되었을 우리 고양이 땡이까지 다섯 식구가 스무 평 남짓한 아담한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사들고 온 맥주를 냉동실에 넣어두고는 찬물로 샤워를 한다. 한바탕 비명을 지르다가 체온이 수온을 따라갈 때쯤 젖은 머리로 뛰쳐나와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켠다. 그 얼얼함에 괴상한 탄성을 지른다. 급하게 식힌 몸에 한낮의 더운 공기가 맞닿고, 점점 짙어질 옅은 저항감을 피부에서 느끼면서, 맥주가 식도를 타고 위장까지 단숨에 그리는 섬찟한 곡선에...


두 시쯤에 퇴근하는 삶이 이상적이지 않나 하는 깜찍한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거기까지 떠올리면 이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시절의 정경이 솟아오른다. 땡이가 자주 올라앉곤 하던 브라운관 티브이, 1인용 갈색 앉은뱅이 소파, 색이 바래가는 17인치 LCD모니터, 나이 든 아파트 단지와 같이 낡아 가는 가로수들, 그 줄기마다 몸을 붙인 매미들의 세찬 물줄기 같은 울음소리가.


어쩌면 내가 추억하는 것은 그 여름이 아니라 그때의 나인지도 모르겠다. 스물의 나에게 가능했던 어떤 것들, 그때 열려있던 가능성의 문들을. 가능성이란 왠지 밝고, 만들어질 듯 말듯한, 막연하고 몽글몽글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인데 조금 이상한 수사이려나. 그때는 모든 일들이 응당 일어나야 할 순서대로 일어나리라 믿었던 것 같다. 점진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삶의 모양이 갖추어지는 것이라고. 삶에서 누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은 오로지 투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 투쟁이 상징적인 것일지라도.


그런 것들을 어렴풋이 알아가는 사이, 들여다보지도 못한 많은 문들이 닫히고 잠겼다. 열린 문에서 새어 나오는 빛들도 흐려지기만 하겠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가만히 눈을 감고, 나에게 영원히 불가능해진 일들 몇 가지를 조용히 꼽아보는 것이다. 접히는 손가락마다 떠올리면서. 어린 그 녀석을. 삐쩍 말라, 서툴고, 어떻게 할 줄을 몰랐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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