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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행인 Sep 10. 2023

옥상에서

230910

승강기의 버튼을 잘못 눌러 옥상에 왔다. 주말이라서인지 나 외엔 아무도 없다. 하늘과 나무를 본다. 가을이 되어가는 중이지만 매미 소리가 시끄럽다. 다행히 너무 습하지도 뜨겁지도 않은, 제법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이곳으로 종종 도망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들이쉰 것보다 더 많이 내쉬려고 노력하면서. 눈을 감은 채로 삶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들과 그럴 수 없는 것들을 헤아려보았다. 뒤의 것이 앞의 것을 압도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들이 나를 짓누를 때 어떻게 고상한 표정을 지으며 견뎌낼 수 있는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숨을 깊게 들이쉬고 버티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있겠는가.


나쁘지 않은 날들이 이어진다. 그날그날 가야 할 곳이 있고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나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 입꼬리를 올리고 명랑한 톤으로 인사하면 화답해주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같은 문제를 고민한다. 기온과 해수면이 서서히 올라가고, 거리에서 사람들이 찔려 죽고, 바다에서는 폐수가 흐르더라도, 나는 어쩌면 당분간은 그런 것들을 모른 체하며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으리라.


그럭저럭 살아가는 나는 몇 가지를 바라고 있다.


환희도 비탄도 아닌 중간 어딘가에 머물기를. 체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를. 아무것도 아닌 것들만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람을 생각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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