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소설집
3년 전쯤 남편과 함께 하는 퇴근길에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장 내일 죽어도 큰 아쉬움이 없다.'는 말을 했다. 빚을 다 갚았고, 아이는 잘 자라고 있으니 내가 없어도 잘 클 것이고,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도 없어서 그냥 지금 이 상태로 삶을 마감해도 여한이 없다는 부연 설명도 했던 것 같다. 남편은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속으로 그게 진심인 것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엄마 같았던 막내 고모가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나서, 나는 우울했고 삶에 회의를 깊이 느끼고 있었다. 고모는 항암 치료로 거동이 불편해지기 전까지 하루에 스쿼트를 300개씩 하면서 자신의 허벅지 근육을 자랑하고, 몸에 좋다는 음식을 계절별로 챙겨 먹고 몸에 안 좋다는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건강관리를 했는데도 모계 유전으로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B형 간염 때문에 간암에 걸리고, 온갖 항암 치료를 견뎠음에도 의사로부터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집에 방문한 호스피스 의사에게 살고 싶다고 하면서 통곡을 할 정도로 누구 보다 삶의 의지가 강했던 고모가 치료 방법이 없다는 진단을 받은 지 한 달 만에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무리 건강관리를 잘해도 타고난 것을 극복할 수는 없고, 항암 치료를 받아도 삶의 질만 나빠질 뿐 아무런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당시 세상을 원망하고 무력감도 느꼈던 것 같다.
당시에는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고모를 애도하고 그리워하는 마음과 내가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봄밤의 모든 것'을 읽고, 내가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 '허무'라는 감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둘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봄밤의 모든 것'은 백수린 작가님의 소설집이다. 7편의 단편 소설을 엮은 것인데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독서 모임을 하기 전에는 에세이나 실용서를 주로 읽어서, 모임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못 읽었을 책이다. 특히 '봄밤의 모든 것'이라는, 내 기준에는 매우 감상적인 제목 때문에 평소의 나라면 결코 손에 들지 않았을 책이다. 그런 책을 여운이 많이 남아서 독서 모임 전 후로 두 번을 읽었다.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첫 번째 소설 '아주 환한 날들'은 일흔이 넘은 옥미 씨 이야기이다. 평온하고 안정된 자기만의 생활을 꾸려나가던 옥미 씨에게 사위가 잠시 앵무새를 맡긴다. 너무 작아서 아직 날지도 못하는 앵무새가 거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어질러서 번거롭고 귀찮기도 하지만 옥미 씨는 앵무새를 돌보면서 오랜만에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앵무새와 함께 생활하면서부터 옥미 씨는 생계를 유지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잊고 지냈던 예전 기억들을 떠올린다. 사위가 앵무새를 다시 데려간 이후 평온한 일상을 되찾았지만, 옥미 씨는 앵무새와 함께 산책했던 천변을 한동안 나가지 못한다. 상실의 고통으로. 그리고 옥미 씨는 도통 쓸 거리가 떠오르지 않아 쓰지 못했던 수필을 처음으로 쓴다.
요즘 우리 집 아이가 햄스터에 푹 빠져있다. 그런데 햄스터는 평균 수명이 2년이란다. 아이가 스스로 햄스터를 돌볼 수 있을 때 입양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햄스터를 잃고 슬퍼할 아이를 생각하면 솔직히 입양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건 내 욕심일 뿐이다. 아이는 대상이 무엇이든 충분히 사랑하고 그것을 잃은 상실의 고통도 스스로 충분히 겪어야 한다. 그래야 옥미 씨처럼 아무것도 쓸 게 없는 삶에서 고통스럽더라도 뭐라도 할 이야기가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런 삶이 더 다채롭고 행복할 것이다.
두 번째 소설 '빛이 다가올 때'는 서른세 살의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마흔한 살 사촌언니의 첫사랑을, 마흔한 살이 된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된 이야기이다.
세 번째 소설 '봄밤의 우리'는 스물여섯의 보라가 이해할 수 없었던 서른여덟의 유타를 15년이 더 지나 각자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슬픔을 나누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된 이야기이다.
돌아보면, 20대의 청춘일 때는 젊음이 영원할 것 같고 세상을 보다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대단한 일을 희망하고 꿈꿨다. 그러면서 대단한 일을 꿈꾸지 않거나 하지 않는 사람들과 매일의 일상은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30대에는 여전히 희망의 끈을 붙잡고 대단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지만 이 세상은커녕 나와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4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여전히 사는 건 힘이 들고 팍팍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과 커피를 나눌 때, 길에 자라는 잡초와 작은 꽃들, 맑은 하늘, 구름을 볼 때, 저녁 산책 길에 개구리, 풀벌레 등의 소리를 들을 때와 같이 작은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
50대 이후가 되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지금까지 내가 느끼는 '나이 듦'은 좀 더 자연친화적이고 마음이 관대해지는 과정이었다. 점점 늘어만 가는 70대 친정엄마의 허리둘레를 보고 좀 더 움직이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친정 엄마는 참다 참다 나에게 '너도 내 나이가 되어 보라'는 말을 날렸다. 그러고 보면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인데, 잔소리는 적당히 해야 하는 것 같다. 결국 지금은 모르고 그때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것도 인생의 재미가 아닐까. 계속 똑같으면 지루하고 재미가 없으니까.
네 번째 소설 '흰 눈과 개'는 자신의 성격을 똑같이 닮아서 안타까우면서도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꼈던 딸이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위선자라고 비난하고 결혼과 동시에 외국으로 떠난 이후, 8년 만에 다시 만나 화해하는 이야기이다.
8년 만에 만난 부녀가 계속 오해하고 갈등하는 게 좀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검은 개가 세 개의 다리로 눈밭 위를 신나게 뛰고 뒹구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아무런 설명 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화해에 이르게 되는 부분이 참 좋았다.
나에게 없는 것이어서 그런지 '온몸으로 뛰어오르는 생명력.' 같은 문장을 보면, 나는 읽는 것을 잠시 멈추고 이런 문장을 곱씹어본다. 이런 문장을 보면 마음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나에게는 온몸으로 뛰어오르지는 않지만 꿈틀거리는 정도의 생명력은 있나 보다.
다섯 번째 소설 '호우', 여섯 번째 소설 '눈이 내리네', 일곱 번째 소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는 대학 동아리 친구인 소희, 다혜, 상아의 이야기이다.
'호우'는, 소희가 오다가다 본 허름한 단독주택에서 여러 화분을 잘 가꿨던 노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전해 듣고 그의 마지막을 상상하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눈이 내리네'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6촌 이모할머니의 모과나무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 다혜가 20대 초반의 가장 빛났던 시절을 회상하고, 이모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생기로 빛났던 이모할머니의 눈, 하루를 살더라도 아프지 않게 살고 싶어서 한다는 어깨 수술, 눈을 처음 보는 아이처럼 그해 첫눈을 보던 이모할머니의 천진한 얼굴이 참 좋았던 소설이다.
이제 곧 생을 마감할 텐데 한글은 배워서 뭐 하나, 전신 마취가 필요한 위험한 수술은 받아서 뭐 하나라는 생각은 큰 오만이다. 노인의 마음이나 삶은 우리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더욱 소중할 것이다.
그리고 노인이 되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즉, 나이가 들어 늦었다고 생각되더라도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를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말 것. 죽을 때까지 두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갖고 배우고 성장할 것. 나이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이를 슬퍼하며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그저 순간순간을 충실히 보낼 것.
'그것은 무엇이었을까'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엄마를 잃은 후 엄마의 삶이 유의미했음을 세상에 알릴 유일한 증거가 자기라고 스스로 정의 내리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살다 무기력에 빠진 상아가, 이제는 마흔 중반이 된 동아리 친구들과 떠난 1박 2일 여행에서 친구 주미로부터 전해 들은 기이한 굴뚝 안의 비둘기 이야기를 통해 삶에 대한 자세나 태도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어린 딸을 교통사고로 갑자기 잃고 떠난 여행에서 기이한 비둘기 날갯짓 소리를 들은 주미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최악을 상상하며 얼마나 쓸데없이 인생을 낭비하며 살고 있는지 마침내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어떤 얼굴로 다가올지 짐작할 수조차 없는 미래와 끝에 대해서 대비할 능력이 마치 우리에게 있는 것처럼 헛되게 믿으면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상아는 "한없이 잔혹한 인생이 얼마나 변덕스러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또다시 기쁨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 더 말했다."라고 하고, 주미와 함께 일출을 보면서 "누군가가 금을 그은 듯 얇디얇았던 황금색 선이 놀랍게도 점점 두꺼워지는 것을. 천천히, 장엄하게. 대체 누가 이런 빛을 만드는 걸까. 그것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잠깐 동안 경외감이 어린 눈으로 그 빛이 번져가는 광경을 바라볼 수는 있고,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했다."라고 말한다.
때로는 이유나 원인을 알려고 무의미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보다, 일어난 일 자체를 그냥 받아들이는 게 더 현명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보통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비극이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들이다. 상상할 수 없는 큰 일을 겪고 다시 생을 이어갈 수 있게 된 주미에게는 위와 같은 깨달음이 있었나 보다. 무기력에 잠식당했던 상아는 여행 이후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잘 일구어 나갈 것 같다.
더 이상 젊지 않고 또 완전한 노인도 아닌 40대 중반-이 소설 속에 많이 등장하는 인물들이고 나도 거기에 속한다. 흰머리가 이제 하나씩 세거나 뽑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고 얼굴에 있는 주름은 웃거나 찡그리지 않아도 그냥 눈에 보인다. 그리고 몸의 어딘가가 불편하거나 아픈 것이 기본값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언제 이렇게 늙어버렸냐고 서로 놀리면서 16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낄낄거리고 있다.
삶은 따지고 보면 허무한 것이다. 초기 20년을 제외하면, 점점 늙고 병들어 갈 일만 남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는 여정이니까. 그렇다고 빨리 죽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언젠가부터 막내 고모의 아까운 삶까지 잘 살아내기로 결심했다. 해보고 싶은 것은 남들-특히 남편이-이 비웃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일단 시작해 보고, 먹고 싶은 것은 그때그때 찾아서 먹는다. 가고 싶은 곳은 시간을 내서 가보려고 노력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 수시로 질문하고 답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낀다. 그것이 무엇인지 또 질문하고 답하려 한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은 어쩌면 참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허무에 빠져서 내일 당장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나의 꿈틀거리는 생명력인지도 모르겠다.
백수린 작가님의 다른 책도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설이라는 세계를 늦게라도 접하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역시 사람의 인생은 어찌 될지 모르니 무조건 오래 살고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