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일지'를 읽고

백범 김구 자서전

by 연이맘

이번 독서 모임에서 읽은 책은 '백범 일지'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그 '백범 일지'를, 부끄럽게도 나는 이번에 처음 읽었다. 심지어 이 책이 김구 선생님의 일기인 줄 알았다. 이 책은 매일매일 기록한 일기가 아니라, 자서전이다. 그동안 제목의 '일지(逸志)'를 일기(日誌)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백범 일지는 상권, 하권, 나의 소원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맨 앞에는 김구 선생님의 '출간사'도 있다.


상권은 김구 선생님이 어린 시절부터 상해 임시정부 주석이 될 때까지를 기록한 것으로, 위험한 일을 하게 되면서 언제 목숨을 잃게 될지 몰라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궤적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하권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다. 나의 소원 부분은 김구 선생님이 독립된 이후 귀국하여 작성한 것으로 1. 민족국가, 2. 정치 이념, 3.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나의 소원‘은 김구 선생님이 1947년에 본인의 민족국가, 정치 이념 등에 대한 철학을 남긴 것인데, 80년 가까이 지난 2025년 현재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시대를 앞서간 내용이다. 김구 선생님이 요즘 우리나라의 음악, 드라마, 영화 등이 전 세계적인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싶기도 하고, 계엄이네 뭐네 하면서 정쟁만 벌이는 위정자들을 보면 얼마나 슬퍼하셨을까 안타깝기도 하다. 김구 선생님은 어떻게 80년 후까지도 내다볼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되셨을까.


백범 일지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돈을 훔쳐서 떡을 사 먹으러 가다가 아버지에게 매 맞은 것부터 양반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과거를 보았으나 부패한 과거 제도에 실망하고 포기한 것, 아버지의 권유로 관상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상이 좋지 않아 더 낙담했지만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것, 동학 운동에 빠져 한 지역의 수령('접주'라고 한다)까지 되었으나 같은 동학당의 공격으로 조직이 와해되어 적장이라 할 수 있는 안 지사(안중근 의사의 부친)에게 의탁한 것, 청나라 유랑을 떠났다가 그곳 의병에 참여했으나 패배하고 달아난 것, 여러 번 약혼했으나 실패한 것 등 젊은 시절 수많은 시도와 실패들이 나온다. 김구 선생님에게 이런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이 있었구나 처음 알게 된 내용들이 흥미로웠고, 이런 위인도 철없는 어린 시절과 어찌할 수 없는 좌절을 수없이 겪은 청년 시절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구 선생님의 삶을 그전과 후로 나눈 사건을 하나 얘기 하자면,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치하포에서 쓰지다를 죽인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김구 선생님은 처음으로 인천 감옥에 투옥되고 그때부터 더욱 여러 사람들의 주목과 도움을 받기 시작한다. 위인전이나 역사서에는 김구 선생님이 용감하게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놈을 때려죽였다는 내용만 나온다. 하지만 백범 일지에는 당시 김구 선생님의 마음이 나온다. 즉, 저 왜놈을 내가 죽일 수 있을까라는 망설임과 두려움. 그리고 그를 죽인 이후 그곳을 떠날 때의 초조함과 걱정, 두려움.


인천 감옥에서 탈옥할 때도 혼자서만 탈옥을 할지 잠시 고민하지만, 신의를 지키기로 마음을 바꾸고 약속한 다른 죄수들을 탈옥시켜 주고 자신도 탈옥을 한다.


다른 사람이 쓴 위인전이 아닌 본인이 직접 쓴 자서전이기 때문에, 이런 내면에서 일어나는 고민, 갈등, 걱정, 두려움을 알 수 있었다. 그 점이 이 책을 읽는 큰 즐거움이었다.


김구 선생님은 겸손하고 참 솔직하신 것 같다. 자서전이라지만 본인의 업적을 포장하거나 부풀릴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것이 전혀 없고 극단적으로 솔직하시다.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투옥되어 고문을 받을 때, 견디기 힘든 배고픔을 이야기하면서, 젊은 아내가 몸을 팔아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들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자책하는 내용이 나온다. 책 전체에서 묻어 나는 너무나 인간적인 이런 솔직함 때문에 김구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더 커진다.


그리고 김구 선생님을 대표하는 것은 무엇이든 좋은 것은 보고 배우려는 열린 모습인 것 같다. 첫 번째 투옥 때 젊은 관리가 권한 서양 문물에 대한 책을 열심히 공부하여 받아들이고, 왜놈들이 밤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들보다 독립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고, 도적떼의 조직력, 결속력을 독립운동 조직에 적용하기 위해 함께 투옥된 강도에게 그 조직 방법을 묻고, 중국에서 도망 다니는 중에도 발달된 농업, 양잠 기술을 부러워하고 이를 우리나라가 배우지 못한 것을 한탄한다. 김구 선생님의 머릿속에는 우리나라의 독립과 발전, 우리 민족의 행복 같은 나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위와 같이 좋은 것을 보고 배우려는 목적이 모두 나라와 동포를 위한 것이었으니까.

한편, 김구 선생님에게는 사랑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공부를 하고 싶다는 아들을 위해 선생님을 모셔와 서당을 차려주신 아버님, 옥바라지뿐만 아니라 두 손주를 돌봐주신 어머님, 경제활동을 하면서 남편 옥바라지를 하고 아이들까지 키운 부인 최준례, 동학운동에 실패하고 피신했을 때 도와준 안 진사와 스승 고산림 선생, 인천 교도소에 처음 수감되었을 때 구호활동을 한 강화의 김주경, 탈옥 후 쫓기는 김구 선생님을 돕고 '김구'라는 이름을 처음 지어준 유인무와 성태영, 청나라를 함께 유랑하고 의병에 같이 참여한 김형진, 이봉창, 윤봉길 의사 등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김구 선생님은 결코 그 사람들의 도움을 잊지 않고 중국에 있을 때와 귀국 후에도 그 사람들을 찾고 유가족을 챙겼다. 좋은 사람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법인 것 같다.


그리고 백범 일지를 보면서 우리 민족이 참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가족도 아닌 남을 위해 전 재산을 바쳐서 구호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고,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김구 선생님을 찾는 편지를 계속 보내고 사람까지 직접 보내는 사람이 있었으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일본에서 상해까지 김구 선생님을 찾아와 자신에게 할 일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떻게 우리 민족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모든 면에서 편해진 오늘날에도 하기 힘든 일들이다. 이렇게 대단한 민족이기 때문에 김구 선생님이 ’나의 소원‘에서 그토록 희망적인 우리나라를 꿈꿀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백범 일지를 도서관에서 보면서 눈물이 나는 것을 참느라 고생했다.

세 번 정도 눈물을 흘렸는데, 첫 번째는 김구 선생님 둘째 딸이 7살에 병으로 죽으면서 옥에 계신 아버님께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하면서 아버님이 자기의 죽음을 알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냐고 했다는 부분이고,

두 번째는 이봉창 의사가 일황을 저격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김구선생님과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선생님의 안색이 몹시 처연해 보입니다. 저는 영원한 쾌락을 누리고자 이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두 사람이 기쁜 얼굴로 사진을 찍으십시다"라고 말하고 살포시 웃었다는 부분이며,

세 번째는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치르러 가기 직전에 김구 선생님께 자기의 새 시계는 한 시간밖에 쓸 데가 없으니 김구 선생님의 헌 시계와 바꾸자고 한 부분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다른 사람을 더 염려하는 그 세 사람의 마음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어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났다. 집 근처 길을 지날 때 가끔 만났던 윤봉길 의사의 동상이 이제는 다르게 느껴진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김구 선생님이 있었고, 김구 선생님 같은 인물이 이 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독립 국가로 존재할 수 있는 것 같다.


일제 강점기 35년, 스스로의 목숨을 보전하는 것도 힘들었던 그 시절에 독립운동가가 직접 남긴 기록을 80년이 지난 지금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크나큰 행운이다. 심지어 그 내용이 감동적이면서도 재미있다. 백범 일지는 나의 예상과 다르게 정말 ‘재미’ 있었다.

이 책을 이제야 읽었다는 부끄러움과 죄송함,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어떤 분들이 말 그대로 목숨을 바쳐서 지켜낸 얼마나 소중한 나라인지, 그런 분들의 후손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애국가 제창과 국기에 대한 경례 같은 의식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백범 일지“를 읽어서 국민 모두 내면에서 솟아나는 애국심과 자긍심을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누군가 나에게 너희 나라에는 어떤 인물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랑스럽게 우리나라에는 김구 선생님이 있다고 대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