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한때 ‘소확행‘ 또는 스몰 럭셔리라는 말이 유행했다. 소확행이라는 말의 기원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라는 것은 귀동냥으로 알고 있었고, 막연히 커다란 행복을 꿈꿀 수 없으니 작지만 확실하게 또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세태라고만 생각했다. 여기에는 좌절이나 체념의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직접 읽어 보니, 그동안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그런 근시안적인 값싼 행복이 아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136 쪽)
라고 한다.
즉, 그가 말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서 중요한 것은 ‘철저한 자기 규제‘였다. 좌절이나 체념이 아니라.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이 에세이는 작가가 미국에 체류할 때 겪은 작고 큰일을 가볍게 이야기하면서 문득문득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마라톤 풀코스를 여러 번 도전하는 이유에 대해, 호기심과 비슷하다고 하면서 “자신 속에 잠재해 있는, 자기가 아직 모르는 것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고,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끌어내보고 싶다는..”이라고 하면서, 이는 장편소설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고(22~23쪽),
양고기의 공포에서는 “고생이나 고통이라는 건, 그게 타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한, 인간으로서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라고 하며(60쪽),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고 혼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기 관리를 얘기하면서, “때때로 문득 ‘혼자서 살아가는 것은 어차피 지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정말 피곤하네‘라고 인정하면서도, 나름대로 힘껏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개인이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그 존재 기반을 세계에 제시하는 것, 그것이 소설을 쓰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75, 78쪽).
그리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마라톤에서는 “컨디션이 나쁠 때는 나쁜 대로 자신의 페이스를 냉정하고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 범위 안에서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나가는 것도 중요한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리하지 않고, 고개를 치켜들고 꾸준히 참고 해나간다면, 다시 조금씩 컨디션이 되돌아오는 법이니까.”라고 한다(213쪽).
마라톤, 여행, 독서, 고양이 같은 작고 사소한 일상에서 삶의 원리나 정수, 기쁨 같은 것들을 놓치지 않고 읽어내는 작가의 안목과 감수성이 부럽다. 이런 작가들의 삶은 얼마나 충만하고 밀도가 높을까. 농밀한 삶에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넘쳐나는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경영자, 작가, 학자 등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의 책을 읽어 보면, 그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삶에 대한 기준과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거기에는 공통점이 많다.
이 에세이에서도 하루키의 자기 관리, 체력 단련, 꾸준한 글쓰기, 단순한 생활, 최선을 다하려는 의지나 노력 같은 대가의 습관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역시 일류는 다르다.
이 에세이를 읽고, 가을 마라톤을 신청하고 시원한 맥주를 마신다. 철저한 자기 규제가 빠진 나만의 작은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