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장편소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나는 무슨 무슨 상을 받았다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를 굳이 찾아 읽거나 보지 않는다. 어릴 때는 그런 것들을 보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지는 것 같아서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나의 지적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인가 싶어서 열심히 해설도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의문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결국 나에게 상을 받은 문학 작품이나 영화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관을 가진 작가가 만든, 거기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해설이 붙은, 그들만의 세상에만 존재하는 지적 허영심의 총체일 뿐이었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상을 받았다는 문학작품이나 영화는 오히려 멀리했다.
하지만 2024년 10월 아시아 여성 작가에게 최초로 수여된 노벨 문학상은 다시 나에게 상을 받은 작가와 그녀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한강 작가님의 '검은 사슴'을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인영, 명윤, 의선, 장이라는 인물이 주축이 되어 엮어 나간다.
잡지사에서 근무하는 인영은 같은 건물 아래층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의선을 알게 되고, 월세 집 수리 중이라 갈 곳이 없는 의선을 우연히 자신의 집에서 재워준다. 이후 의선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8차선 도로 한복판에서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뛰어다니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다 사라진다. 그리고 갑자기 인영의 집 앞에 나타난다. 인영은 변해버린 의선을 씻겨주고 먹여 주며 자신의 집에서 함께 생활한다. 그렇게 갑자기 인영의 삶으로 들이닥친 의선은 인영의 바다 사진들을 태운 날 목욕탕에 다녀온다고 하면서 나가 돌연 사라진다.
인영의 대학 후배인 명윤이 우연히 광화문에서 사라졌던 의선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의선은 또다시 갑자기 사라진다.
명윤은 인영을 설득하여 의선을 찾아 그녀의 고향이라고 생각한 쇠락한 탄광 도시 황곡에 가기로 한다. 인영은 황곡을 방문하기 위한 취재 구실을 찾는 중 광부들의 사진을 찍는 작가 장을 알게 되어 장의 인터뷰가 의선을 찾는 여정에 포함된다.
장은 열정적으로 광부들의 사진을 찍는 작가였으나, 아내가 떠나고, 집에 불까지 나서 10년 넘게 찍어 온 사진들이 모두 없어진 이후, 광부들 사진을 더 이상 찍지 않고 동네 사진관에 얹혀사는 신세였다.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는 인영은 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인영과 명윤은 여행의 본래 목적에 따라, 제정신인 듯 제정신이 아닌 듯한 의선의 지난 말들을 더듬어, 황곡에서 월산, 어둔리, 연골까지 의선의 고향 집을 찾아간다. 의선의 고향 집에서 의선의 흔적을 찾지만 의선을 만나지는 못하고, 눈, 추위, 아픔, 어둠, 두려움, 불안 등 그야말로 죽을 고비를 넘겨 겨우 서울행 열차에 오른다. 그런데 갱도로 약해진 암반이 무너져 열차 탈선 사고까지 당해 인영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한편, 사라진 의선은 연골을 떠나 트럭을 얻어 타고 가서 바다를 처음 본다. 의선은 인영과 명윤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들과 함께한 시간을 분위기와 느낌으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의선은 타다 만 인영의 바다 사진 한 장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인영이 입원해서 집에 없는 동안 그것을 인영의 집에 두고 간다.
각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어둠 속에 살고 있는 검은 사슴들 같다.
인영은 일에 매진해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언니를 삼키고 어머니를 뿌린 검은 바다 사진을 수시로 찍으러 다니고, 형광등을 끈 채 작은 등만 켜 자신을 어둠 속에 둔다. 그리고 인영은 다른 사람을 곁에 두지 않는 평소 성격과 달리 자신과 비슷한 부류인 명윤과 의선에게 본능적으로 끌려 그들을 염려하고 챙긴다.
명윤은 불우한 집인 어둠에서 도망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으나 항상 제자리에 있는 자신을 혐오해서 끊임없이 지껄이는 태도를 보였지만, 사랑하는 의선을 만나 나름대로 적극적인 생활력을 보인다. 하지만 의선이 돌연 사라져버린다.
의선은 하루에 다섯 시간만 해가 드는 연골에서 스스로 나와 갖은 일을 하며 열심히 생활했지만, 세상에 있는 듯 없는 사람으로 어렵고 힘든 일을 견디며 사는 것이 온전한 정신을 보존하지 못하게 했는지, 원래의 자신을 잃었다.
장은 사랑하는 아내와 사진을 모두 잃고 어둠 속에 자신을 가둔 채 스스로를 학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거의 잊힌 광산, 탄광, 갱도, 막장, 광부같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쇠락해간 산업과 그 속에서 목숨을 조금씩 팔아서 먹고살았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오늘도 하루하루 쇠락해가는 곳에 속한 사람들은, 아니 모든 살아 있는 이들은 막막한 어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검은 사슴은 깊은 땅속에 살면서 햇빛을 보기를 꿈꾸지만, 광부들에게 속아 뿔과 이빨을 잘려 피를 흘리며 암반 사이를 기어다니며 울다가 죽을 때면 들쥐 새끼만 하게 웅크려져 있다고 한다. 만에 하나 검은 사슴이 땅속에서 나와 햇빛을 보면 순식간에 끈적끈적한 진홍색 웅덩이로 변하고 그 웅덩이가 썩은 자리에는 붉은애기풀이 자란다고 한다. 붉은애기풀은 산삼보다 찾기 더 힘든데, 그것의 뿌리는 미친 병이나 어질머리병을 낫게 해준다고 한다.
인영은 집으로 돌아와 이웃집의 청국장 냄새를 맡고 '살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살아 있다는 것은 청국장 냄새를 맡는 것처럼 작고 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디, 인영, 명윤, 의선이 긴 여정을 통해, 장이 아내의 죽음을 통해, 각자의 긴 어둠에서 나와 진홍색 웅덩이로 변하고 썩더라도 각자의 붉은애기풀을 키워내기를 희망해 본다.
누구나 마음 한켠에는 각자의 어둠을 간직하고 있고, 때로는 그 어둠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 또한 유복한 환경에서 잘 자란 사람보다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바르게 잘 자란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을 보면, 마음속에 어둠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마음속에 어둠이 있건, 어둠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건, 모두 각자의 삶 속에 있다. 삶에는 찬란한 빛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둠 속에만 머물지 않고 어렵고 힘들고 귀찮더라도 한 발짝 내디뎌 빛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나도 그리고 우리도.
이 소설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문장이 정말 많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생각하고 쓸 수 있을까.'라는 감탄을 하면서 여러 번 읽게 되는 문장들로 인하여, 스토리 진도를 나가기가 힘들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을 번역이 아닌 모국어로 읽을 수 있는 행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또한 정말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