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 원으로 살자. 그리고 돈이 다 떨어지면 한국으로 돌아가자
런던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급작스럽게 퇴직하게 된 회사는 임금을 체불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빈번하게 있었던 일이었지만 그다지 강하게 의사 표현하지 않다 보니 임금 체불에 대해 가볍게 여기는 듯했다. 2주일 뒤에 주겠다고 했지만 역시 약속 날짜에 월급은 입금되지 않았고 연락도 없었다.
이때 참 많은 고민이 있었다. 주변에 아는 분들께 연락을 했을 때 이참에 그동안 하고 싶어 하던 유럽여행을 하는 게 어떠겠냐며 제안하며 금전적인 부분이 필요하면 지원해주겠다는 고마운 분들이 있었다. 그 말들이 참 힘이 되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고 한다. 나는 이미 그 말들을 전해 들은 순간부터 큰 빛을 진 것만 같았다.
통장잔고를 확인하거나 어떠한 계산을 하진 않았다. 그냥 본능적으로 다가온 금액이 있었다. "1만 원". 고정 지출 중 식대만이 유일하게 내가 노력하는 것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하루 만 원으로 살자. 그리고 돈이 다 떨어지면 깨끗하게 포기하고 한국으로 가자'. 그렇게 하루 식대 만 원의 런던 생활을 시작했다.
당장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아침/점심을 굶어서 절약된 돈으로 저녁 한 끼를 해결하거나 Iceland에 있는 냉동식품을 애용했다.
매일마다 Sainsbury, Tesco, Waitrose 에 드나들며 각 재료들 가격부터 살폈다. 그렇게 계속 마트를 드나들며 가격대를 눈으로 훑다 보니 어느덧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마트마다 서로 돌아가면서 상품들을 할인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을 즈음 상품마다 본래 가격과 할인 가격에 대한 감이 생겼다. 이제는 어떤 상품의 가격을 봤을 때 '아 이건 저쪽에 가면 얼마에도 살 수 있는데'라는 판단이 저절로 되었다.
그렇게 한 끼씩 해결해 가면서 길거리에 있는 맥도날드, KFC, 카페, 치킨, 피자집 등에서 저렴한 옵션이 있는지도 살폈다. 계속 발품을 팔아가며 만원으로 하루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럿 조합들이 맞춰졌다.
Sainsbury, Tesco, Waitrose
식재료가 저렴하기 때문에 주로 직접 요리를 했다.
0.99£ 필터 커피
Starbucks, Pret a manger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1파운드 필터 커피를 판매한다.
2£ 맥도날드
맥도날드에 가면 Daily Chicken Wrap을 판매한다. 세일 메뉴를 이용해서 햄버거 2개를 먹기도 했다.
Meal deal set
Sainsbury, Tesco, Waitrose와 같은 대형마트에 가면 Meal deal set(샌드위치+음료수+과일/과자)를 판매한다.
Pork belly
3파운드짜리 Pork belly를 사서 저녁 2끼를 먹었다.
한국 라면
라면과 밥(1파운드)을 조합해서 먹었다.
Pasta
파스타 재료를 대형마트에서 번걸아가며 세일을 한다.
치킨, 버거, 피자 길거리 상가
가장 저렴한 옵션을 선택해서 먹었다.
Iceland
음식의 질은 좋지 않지만 저렴한 가격의 냉동식품이 많다.
Evening Meetup
주로 저녁에 열리는 Meetup 이벤트는 피자나 다과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 외 저녁식사에 초대받거나 이사를 도와주고 같이 식사를 하면서 식대가 절약되기도 했다.
닭고기, 과일, 계란, 요거트, 바나나, 오렌지 주스와 같은 것들을 꾸준히 섭취했다. 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닭가슴살과 야채를 잔뜩 넣은 중국분에게 배운 닭고기 수프를 먹어주었다.(정말이지 먹어주었다는 표현이 알맞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가계부를 꺼내 들었을 때 내가 얻은 성적표는 한 달 식대 23만 원.
시간이 지나고 귀국 무렵 남은 돈으로 12파운드짜리 스테이크를 먹을 때 어금니 쪽에서 아려오는 느낌이 있었다. 미각이 놀란 것 같았다. 고급 레스토랑도 아니었지만 스테이크에서 느껴지는 재료의 질과 맛이 너무나 다르게 느껴졌다. 이렇게 느끼는 나 자신이 참 이상해서였는지 눈물이 핑 돌았다.
(글의 마지막 부분을 마무리하지 못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