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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하해 Dec 07. 2023

我無理由(아무이유)

짧은 소설 '그럼 된다'

한 남자가 눈 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내 이번엔 절대로 그냥 가지 않으리라”.


언제부터 왔는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몇 년에 한 번씩 씩씩 대면서 절을 찾고 있다


“말씀을 해 주시지요”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으니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알려 주시지요”


뚱딴지같은 그였지만 늙은 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같은 말


“그 두 손을 가지고 당신이 물을 온전히 담고 있으면 내 이야기해 줌세”


남자는 두 손바닥을 위로하고 손을 모아 물을 담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담고 있으라는 거야” 짜증 섞인 내면의 목소리는 항상 있었지만 그는 꾹 참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다.


손에 힘이 조금씩 빠지자 물이 두 손 사이와 손가락 사이로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전보다는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손이 아파온다.


조금만 더 참아 보자


조금만 더


하지만

그만 손이 풀어져 물이 다 쏟아진다.


“왜? 안 내려가고 뭐 하고 있소”


“스님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그래요?”


“그럼 한 번 더 해 보시게”  


남자의 말투가 바꿨다.

그리고 눈 빛도

남자는 다시 손을 모으고 물을 담았다.


그리고 물을 다시 한번 응시한다.


“꿀꺽 꿀꺽”


남자는 갑자기 손에 담고 있는 물을 마셨다.


“허허.. 이제 뭘 안 것 같으니 다시 찾아오지 말게나. 그동안 말동무 해 줘서 고맙네”.


“잘 살게”


남자는 울면서 큰 절을 하고 그 절을 내려온다.


하얀 눈 밭 남자의 발자국,

눈이 오려나

곧 이 발자국도 다시 덮히리라

새로운 눈으로


누가 언제 다시 찾아올까

아무 사연도 모른체

누가 또



담으려고 하면 힘이 든다

담고 있으면 흘러내리거나 빠저 나온다

난 손바닥 만한 물도 담아낼 수 없다.


온전하게 담아내는 것


내가 물이 되거나

내 몸이 강한 그릇이 되면 된다.

그릇은 깨지기 쉬우니

내가 물이 되는 것이 더 확실하다


물은 들어가서 정화되고

남은 찌꺼기가 다시 소변으로 나온다

우리는 계속 물을 마셔야 한다.

안 그러면 죽는다.


마음의 우물엔 물이 차 있는가?

우물 옆엔 많은 꽃나무 과일나무들이 있는가?

우물로 사람들과 짐승들이 마시러 오는가?


그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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