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서는 가능하지만 축구장에서는 불가능한 것
최근 스레드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접했다. 축구장에도 야구장처럼 중립석을 마련해 원정 팬이 홈석에 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축구 팬으로서, 나는 이 주장에 고개를 저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축구는 야구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한 경기의 중요도가 크기 때문이다.
야구에서는 시즌이 길고 경기 수가 많아 한 경기의 승리에 대한 긴장감이 적다. 반면, 축구는 주 1회 경기를 하고 전체 경기 수가 적어 경기마다 순위와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구조이다. 그렇기에 축구 팬 문화는 열정적인 응원이 강조되어 있으며, 이런 열정적인 문화를 가진 각 구단팬들이 같은 구역에 있을 때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크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경기 방식의 차이가 아닌, 팬과 경기에 대한 문화적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KBO에서는 구단이 성적 부진으로 최하위에 머물러도 다음 해 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권을 얻어 선수 보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에 따라 리빌딩이라는 명목 하에 팬들이 어느 정도 하위 성적을 용인해 주는 분위기도 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8개 구단 시절 "엘롯기"라 불리던 3개 구단은 몇 시즌 동안 하위권을 다투었지만, 팬들이 장기적인 팀 재건을 바라보며 불만을 폭발시키지 않았다.
(야구팬들도 리빌딩이란 명목의 탱킹 시즌을 완전히 용납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K리그는 다르다. 2011년 승강제 도입 이후 드래프트 제도는 폐지되었고, 2016년 자유계약제가 정착되며 성적이 구단의 생존을 좌우하게 되었다. 승강제 하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팀은 바로 2부 리그로 강등되며, 10위와 11위 팀도 플레이오프에서 2부 팀과 잔류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에서 축구 팬들은 성적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으며, 연패가 이어지면 서포터들의 분노가 폭발적으로 커지게 된다.
2부 리그 내려가는 게 그렇게 안 좋은가?
당연히 그렇다.
부산아이파크, 성남 FC, 수원삼성. 이 세 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과거 1부 리그에서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축구 명문 구단으로 명성을 떨쳤던 팀들이다.
먼저, 부산아이파크는 K리그에서 4번 우승했으며, 코리아컵 1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회 우승하며 전통적인 축구 명문 구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015년 시즌에 강등된 이후 2020년 단 한 시즌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2부 리그에 머물고 있다.
성남 FC 역시 전설적인 구단이었다. 과거 성남일화천마로 불리며 K리그 1 최초 3연패(1993, 1994, 1995)와 또다시 3연패(2001, 2002, 2003)를 달성한 유일한 구단으로, 18년 동안 최다 우승 타이틀을 유지했다. 하지만 2013년 시민구단으로 전환한 후 2016년 강등되었고, 두 시즌 후 승격했지만 2023년에 또다시 강등되며 현재까지 2부 리그에 머물고 있다.
마지막으로 수원삼성은 리그컵 최다 우승(6회), 슈퍼컵 최다 우승(3회), 코리아컵 최다 우승을 기록하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이었다. 2024 시즌 역사 상 처음으로 2부 리그에 내려간 수원은 시즌 시작 전 축구팬들의 기대와 달리 승격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강등은 단순히 리그 변경 이상의 의미가 있다. 명문 구단이 지닌 역사와 명성, 팬들의 자부심, 경제적 손실 등에서 큰 타격을 받게 된다. 2부 리그에 머문다는 것은 이러한 구단에게 매우 큰 시련이자 위기다.
자, 수원 삼성을 예시로 들어보자. 수원의 관중 수는 강등 이후 큰 폭으로 감소했다. (11/4 기준)2023 시즌 K리그 1에서 수원삼성의 총 관중 수는 224,177명, 평균 관중 수는 11,799명이었다. 그러나 K리그 2에서 시즌을 치르고 있는 현재, 수원삼성의 총 관중 수는 171,211명, 평균 관중 수는 10,071명으로 약 1,500명 가량 줄어든 상황이다. 수원삼성뿐 아니라 성남 FC, 부산아이파크와 같은 전통의 명문 구단들도 강등 후 관중 수가 줄어드는 당연한 현상을 겪었다.
수원삼성은 K리그에서 관중 동원력이 가장 높은 구단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강등 이후 평균 관중이 1,000명 감소했다는 것은 축구 구단에게 강등이 경제적 손실을 얼마나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경기장 운영 수입 감소뿐만 아니라 팬덤 유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구단이 다시 1부 리그로 승격하는 것과 잔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축구 경기에서 원정팬이 홈 팀의 관중석에 앉을 수 없는 이유는 그 경기의 성격과 팬들 간의 경쟁 심리, 그리고 구단 성적의 영향력 때문이다. 승강제의 존재로 인해, 구단의 성적은 팀과 팬 모두에게 상당한 감정적 그리고 경제적 영향을 미치고, 이는 축구가 다른 스포츠와 구별되는 독특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야구에 상황을 대입하여 상상해 보자. 응원하는 팀이 성적 부진으로 인해 강등된 후, 2군 리그로 밀려난다면, 한동안 KBO 리그에서 경기를 볼 수 없게 되고, OTT 서비스나 현장에서 직접 관람하지 않는 이상 팀 소식을 접하기 어려워지며, 주요 뉴스에서는 응원하는 구단의 관련 기사가 기고되지 않는다. 또한, 1,2선발 투수, 1,4번 타자 등 주요 선수들이 다른 상위 리그 팀으로 이적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면, 엄청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K리그의 좌석 배치는 단순한 편의 이상의 문제다. 구단 성적이 팬들의 자부심과 경제성에 직결되는 만큼, 홈 팬은 홈석에서 원정팬은 원정석에서 관람하도록 구분하는 것은 팬들의 감정을 보호하는 장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리그는 KBO수준의 관중동원력을 갖추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야구에 비해 축구가 가진 몇 안 되는 강점은 지역 연고지 기반의 응원 문화지만, 대중성, 관중 경험 측면에서 부족함은 상당히 두드러진다.
그러나 K리그가 KBO의 모든 요소를 무작정 따라 하기보다는, 축구 고유의 연고지 문화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먼저 연고지를 통해 구단을 응원하는 문화를 더욱더 키웠으면 좋겠고, 현재 K리그에서 시행 중인 1+2 강등제를 1+1 제도로 조정하고, 1부 리그 팀을 14~16개로 확대하여 강등에 대한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각 팀 감독들이 단기적 승리에만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전술 철학을 반영한 도전적인 전술을 선보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이고 이렇게 된다면, 리그의 경쟁력은 물론이고, 팬들이 구장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더 많이 생길 것이라고 확신한다.
언젠가 K리그도 1000만 관중 시대가 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