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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계를 뒤흔든 '머니볼', 축구에도 가능할까?

축구를 읽다: 정량적 지표를 어떻게 활용하고 발전시켜야 할까?

by 안성준

영화 <머니볼>은 야구계의 선수 영입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꾼 실제 사건을 극화한 작품입니다.

영화 '머니볼'의 실제 주인공 - 빌리 빈

스카우터의 오랜 경험과 '감'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선수들의 정량적 지표, 즉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수 영입과 팀 운영을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은 '감'이 아닌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음을 증명했고, 이는 현대 야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축구에서도 이런 방식이 가능할까요?

축구는 야구와 본질적으로 다른 특성을 지닙니다. 이러한 전제하에, 과연 축구에서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선수의 능력과 경기 기여도를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축구판 머니볼'이 가능할지 함께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축구에서 정량적 평가의 어려움

축구는 야구와 달리 훨씬 더 복잡한 스포츠입니다. 야구는 투수와 타자 간의 대결이 주를 이루고, 상황이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되며 반복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축구는 22명의 선수가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 경기 흐름 속에서 플레이합니다. 고정된 상황보다 유동적인 플레이와 복잡한 전술적 움직임이 경기를 지배하기에, 축구에서 의미 있는 정량적 지표를 만들기는 훨씬 까다롭습니다.


예를 들어, 한 선수가 특정 플레이를 펼쳤을 때, 그 플레이가 경기 중 어떤 상황과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단순한 패스 성공도 그것이 결정적인 공격 기회로 이어졌는지, 아니면 단순한 볼 돌리기였는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축구가 단순한 숫자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 어려운, 맥락 의존성이 높은 스포츠임을 방증하며, 정교한 정량적 지표 개발의 주요 난제로 작용합니다.


축구에서 사용되는 기존 정량적 지표


물론, 축구계에서도 이미 다양한 정량적 지표들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통계로 골, 어시스트, 패스 성공률, 태클 성공률 등이 있는데, 이러한 기본 통계는 선수의 기여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단순히 이 수치만으로 선수를 평가한다면, 경기 내내 훌륭한 움직임으로 팀에 기여했지만 골을 넣지 못하거나 어시스트를 하지 못한 공격수는 저평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2012년 4월 Opta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하던 Sam Green의 '공격수들의 퍼포먼스를 평가해보자'는 의견으로 기대 득점(xG)라는 통계가 탄생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고급 통계(Advanced Stats)'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기대 득점(Expected Goals, xG)'입니다. 이는 특정 슈팅 상황에서 득점이 될 확률을 수치화한 것으로, 슛의 위치, 각도, 수비수의 위치 등을 반영해 득점 기대치를 계산합니다.


비슷한 개념으로, 패스가 도움으로 이어질 확률을 나타내는 '기대 도움(Expected Assists, xA)'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기회 창출 패스를 의미하는 '키 패스(Key Pass)', 공격 방향으로의 패스를 나타내는 '전진 패스(Progressive Pass)', '드리블 성공률' 등은 선수들의 경기 내 영향력을 보다 세밀하게 분석하는 데 활용됩니다.


축구에서 '머니볼' 방식의 도입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축구에서도 머니볼 방식이 적용될 수 있을까요?


이미 여러 축구 클럽들은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선수 영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의 브렌트퍼드 FC와 리버풀 FC는 선수 영입 시 고급 통계를 적극 활용하는 대표적인 클럽입니다. 이들은 데이터를 통해 선수의 경기력뿐만 아니라 잠재력까지 평가하고, 이를 통해 합리적인 영입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축구에서 정량적 수치로 선수를 완벽하게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축구는 수많은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현재의 정량적 분석만으로는 선수의 모든 가치를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여전히 스카우터의 경험과 직관, 그리고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중요합니다.


데이터, 축구의 어떤 영역까지 측정할 수 있을까? - 미래의 정량적 지표


축구에서 보다 정확한 정량적 지표를 만들기 위해서는 포지션별로 세분화된 지표가 필요합니다.
물론 현재도 수비수의 경우 공중볼 경합 성공률, 태클 성공률, 패스 성공률 등으로 평가하지만, 더욱 고도화된 지표가 요구됩니다.


필자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현대 축구, 특히 펩 과르디올라 감독 이후 '포지셔닝'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포지셔닝' 능력을 어떻게 정량화할 수 있을까요?


현재 단순히 측면, 하프스페이스, 중앙으로 구분하는 필드 구역을 마치 바둑판처럼 더욱 세밀하게 나누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센터백의 경우, 'ZONE 1'(아군 페널티 박스 근처 핵심 수비 지역)과 중앙-하프스페이스 지역에서의 공간 점유율 및 1:1 돌파 비허용, 그리고 해당 구역에서의 패스 성공률 및 탈압박 성공률 등을 주요 지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풀백이라면 하프스페이스와 측면 지역에서의 태클 성공률, 드리블 돌파 성공률, 크로스 정확도, 전진 패스 빈도 및 성공률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기존 지표를 활용하면서도 훨씬 세밀하고 맥락적인 선수 평가를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세분화된 공간 기반 지표를 활용하면, 선수가 감독의 전술적 지시, 특히 포지셔닝 요구를 얼마나 잘 이행하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특정 구역을 벗어난 활동량 데이터와 결합하면, 해당 선수가 동료를 지원하거나 다른 지역의 플레이에 관여하는 '오프 더 볼' 움직임의 가치까지도 측정 가능할 것입니다.


이 부분들은 아직 정량화하기 어려운 영역이지만, 앞으로 축구 분석이 나아가야 할 중요한 방향입니다.

마지막으로, 리더십, 팀워크, 압박감 극복 능력과 같은 '무형의 가치'들 역시 정량화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심리적, 정신적 요소들을 측정하고 평가하려는 노력도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축구 분석의 미래

기술의 발전은 축구에서 정량적 분석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GPS와 같은 추적 시스템, 또는 광학 트래킹 기술은 선수들의 움직임과 경기 내 활동을 더욱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게 해줍니다.


물론 획기적인 기술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현재 수집 가능한 방대한 데이터를 어떻게 '잘' 해석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즉, 데이터의 양적 팽창만큼이나 질적 활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결국 축구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많은 스포츠입니다. 따라서 축구의 정량적 분석은 데이터를 맹신하기보다는, 인간의 통찰력과 경험적 판단을 보조하고 상호 보완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 것입니다.


데이터와 인간의 지혜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축구 분석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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