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쟁이가 된 개미.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산으로 가지 않은 MZ들은 버티기 시작했다. 빚으로.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주저앉아버린 나는 엄마를 위해 연기를 하던 무대에서 내려오기로 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나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열정 페이도 마다 하지 않고 무작정 뛰어들었다. 그런데 꿈 하나만 믿고 대책 없이 뛰어든 대가로 나는 또 빚을 지게 되었다. 어시스턴트로 밤낮없이 일했지만 열정 페이로 받는 돈은 한 달에 고작 50만 원 정도였다. 이미 대학을 다닌 벌로 받은 빚과 나이를 먹은 대가로 지불해야 할 나잇값이 있었던 나는 결국 고민 끝에 꿈마저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꿈을 포기한 나는 일단 돈부터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모아 이곳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의 간절함을 열정 페이로 악용하는 이 사회에 정이 뚝 떨어졌다. 그렇게 열정 페이로 쌈을 싸서 개나 줘버리고 싶은 이 헬조선을 떠나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나는 영어 방문 교사, 면세점 판매원, 레스토랑 홀서빙 등등 정말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돈은 쉽게 모이지 않았다. 다 그놈의 빚 때문이었다. 허무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대가로 받은 게 빚이라니. 이런 사회가 떠나가는 무정한 당신만큼이나 야속했다.
그렇게 이곳에서 탈출하는 게 유일한 꿈이 되어버린 그때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렇게 내 눈에도 콩깍지라는 게 씌어버렸고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서 행진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날개 옷을 잃어버린 선녀처럼 아이들까지 낳아 여전히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모아둔 돈은커녕 빚뿐이었지만 오피스텔에서 시작하는 신혼집은 많은 혼수가 필요하지 않았고 딱히 결혼식에 대한 로망도 없었던 터라 결혼식 비용은 축의금으로 거의 충당이 됐다. 문제는 결혼식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내가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였다. 또다시 빚으로 버티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나는 오늘도 이 헬조선을 떠나지 못하고 여전히 빚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수많은 MZ들은 꿈을 포기하지 않은 대가로 혹은 열심히 공부하고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을 해도 빚쟁이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