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는 모든 게 느렸다. 뒤집기도 늦고 걸음마도 늦고 말도 늦었다. 시가에서는 통화를 할 때마다 언제 뒤집을 거냐, 언제 걸을 거냐, 언제 말할 거냐며 아이를 재촉했다. 때가 되면 하겠지 했던 나도 말이 늦어지니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검색창에 말이 느린 아이를 검색하면 자폐 체크 리스트가 함께 나왔고 예능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아이들은 죄다 말을 잘하는 것은 물론 영어에 심지어 몇 개국 어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화면 속 아이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데 우리 아이만 멈춰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 기사에서 한 정신과 전문의가 기고한 말이 늦은 아이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그래, 아이야. 말과 글은 단지 사람들끼리의 소통을 위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도구의 하나일 따름이란다. 그러니 그것을 할 수 없다면 조금 불편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빨리 배우고 능숙하게 한다고 해서 결코 훌륭한 건 아니란다. 나는 네가 지구상의 나무 이름을 모두 외워서 말할 수 있지만 정작 숲에 가면 소나무와 참나무를 구별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나무의 이름은 전혀 알지 못하더라도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지닌 차이들을 예민하게 구별해 낼 수 있는 아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단다. 그렇게 구별해 낸 나무마다 너의 방식으로 이름을 붙여주렴. 그것이 말이든, 노래든, 그림이든, 춤이든 말이다." -2017년 생일 바로 전 날 진료실에서 김학철(출처 http://naver.me/5DhYkW06)]
글을 다 읽고 나니 갑자기 엄마가 떠올랐다. 학창 시절 엄마는 시험 전날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하던 내게 일찍 자라며 혼을 냈다. 칭찬을 해줘도 모자를 마당에 혼이 나니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리고 엄마는 돌아서며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말라고, 공부가 다가 아니라고. 그때 블록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반짝이지 않아도 넌 이미 내게 별이라고.
첫째는 편식도 심했다. 나도 처음에는 아이를 골고루 먹이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재료들은 잘게 다져 고기와 섞어서 동그랑땡을 해주기도 하고 고기 속에 숨겨보기도 했지만 아이는 귀신같이 알고 입조차 벌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아이를 속이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아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아이와 같은 식단으로 먹고 아이가 먹지 않으면 먹지 않는 대로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는 어느 날인가부터 자연스럽게 내가 먹는 대로 따라먹기 시작했다. 이제는 골고루 잘 먹는 아이가 기특하지만 가끔은 아이가 좋아하는 재료들을 다 넣고 야채 하나 들어가지 않은 베이컨 콘버터 간장 계란밥을 해준다. 그게 편식하지 않는 아이에게 주는 선물이자 고마움의 표현이다.
Today's recipe.
<베이컨 콘버터 간장 계란밥>
1. 팬에 주사위 크기 정도의 버터 한 조각과 다진 베이컨 1큰술을 넣고 볶다가 옥수수 2큰술을 넣어 조금 더 볶아준다.
2. 1에 계란 2개를 넣고 소금 한 꼬집으로 간을 한 뒤 계란을 스크램블 한다.
3. 그릇에 밥 한 공기를 담고 간장과 참기름을 취향껏 두르고 스크램블 한 베이컨 콘버터 계란을 올리고 돌돌 말아서 꽃 모양으로 만든 베이컨을 올려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