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에게 찾아온 연애 감정

02 - 감정의 싹이 트기 전

by 시기차차

해외 생활을 시작한 지 2년이 채 안 됐을 때, 이별이 찾아왔다.

너무나 아팠다. 정말, 너무 아팠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에는 개인적인 일로 정말

내가 감당할 수 없지 않을까라는 바닥까지 내려간 그 시기들..

또 2년이 지난 후엔 다행스럽게도 아버지의 건강, 나의 자금 사정 등 회복이 되어,

어느 정도의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었지만,

한국에서 지냈던 나의 모습과 이 과정들이

지난 나의 모습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한국인 여성과의 연애’가
어느 순간부터 두려워졌다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결혼은 두 사람만의 약속이 아닌,
집안과 집안의 결합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리고 나 역시, 집, 차, 안정적인 수입이라는 조건을
먼저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보다 그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마음이 앞섰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나는 이혼 가정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 사실은 내게 상처로 남지 않았다.
부모님의 선택을 존중했고, 무엇보다 아버지는 내게 두 배의 사랑을 주셨다.

덕분에,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진심으로 느낀다.


가끔 상상해 본다.
내게 딸이 있다면, 그 딸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남자가 있다면 나는 어떤 마음이 들까?

그 남자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람이길 바라고, 경제적으로도
내 딸이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것 같다.


이런 생각을 나 자신에게 적용해 보면

나 역시 누군가의 가족에게 부담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조금은 자신 없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지금 내 솔직한 마음이다.


이 글은 진행 중인 이야기다. 하지만 어쩐지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소모임 활동을 통해 ‘좋은 동네 친구’가 생겼다.

웃는 모습이 예쁜 사람,
내향적이지만 조심스레 마음을 여는 사람.
말을 참 예쁘게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종종 모임 후 귀가 길에 함께 걷곤 했다.
연애 이야기, 결혼에 대한 생각,
직장 이야기, 사소한 일상들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이 이성적인 호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좋은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


처음엔 이 마음이 여름 소나기처럼
갑작스럽게 쏟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봄이 왔음을 알리는 조용한 봄비처럼

서서히, 그리고 분명하게
내 마음을 적셔온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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