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고 싶은 글의 장르는 '리틀 포레스트' 같이 좀 잔잔하지만 그 안에 희로애락이 다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한강작가님의 빛과 실이라는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수록을 읽고 나서 느낀 건 나 또한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또 그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글로 풀면서 내가 그 질문들 사이사이를 꿰뚫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들자면 얼마 전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했다.
설문조사에서 물었던 행복의 색깔과 모양은
'행복' 관련된 내 질문을 해결하고자 했던 과정이었던 것이다.
내가 글쓰기에 관심이 들고 얼마 후, 고등학생 신분의 작가가 책의 수익으로 1억을 기부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초반엔 글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었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었고, 나랑은 다른 세계 사람이라고만 치부했었지만 글에 진심으로 바뀌던 중,
저 아이는 저 어린 나이에 뭘 알고. 뭘 보고. 저렇게 큰돈을 기부하는 걸까
1억이라는 큰돈의 무게를 모르는 거 같아 상당히 거슬리는 아이였다.
하지만 SNS 영상을 보던 중 그 아이의 영상이 자꾸만 떴고 또 얼굴을 보니 이쁘게 생겨 얼굴로 먹고 사나라는 마음과 함께.
내가 처음 접했던 그 아이의 영상은 자기 친오빠가 잘생겼다라는 걸 인정하는 내용이었기에
그 말이 얼마 전 못생긴 남자친구와 헤어진 내 결핍을 건드는 거 같아 상당히 마음이 불편했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거슬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게 말이다.
브런치 앱에서 준비해 놨던 글을 다 내놓고 어떠한 글로 이어가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
집 근처 서점에서 본 책들의 제목들은 꽤 흥미로웠다.
내가 평소 신경 쓰였던 소재 또는 한 번쯤 깊게 파고 들어가 그 끝이 어디인가에 대해 다뤄보고 싶은 것들이 제목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시선,,
보통 앞을 보고 걸으면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친다.
그럼 사람들은 보통 마주치거나 피한다
특이한 경우 끝까지 쳐다보기도 한다.
난 거짓말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시선, 즉 눈이 가장 많은 걸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의 눈을 보는 걸 좋아했고
그 눈 안쪽에서 비치는 두려움, 분노, 호기심 등이 흘러나오는 걸 찾는 게 내 작은 취미였다.
하나, 언제가부터 그 눈들은 읽히지 않기 시작했다.
아무리 오래 자주 쳐다봐도
안 보이는 철판을 하나 깔아놓은 듯
당사자 마저 자기의 감정을 모른 채 할 때
그 눈들은 감정이 없어졌다.
그저 해맑거나 밝기만 한 그런 일관된 눈들이었다.
또는 아무리 숨겨 보이는 게 없어 보일지라도
내가 예상치 못한 감정들이 튀어나올 때
나는 내 눈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눈은 너무 많은 걸 말해주는 동시에 숨기고 있었다.
_
그리고 입체적인 사회를 온몸으로 느끼며
한 번쯤은 앞뒤 생각 안 하고
꼴리는 데로 사는 게 내 추구미였다.
그런 사람을 가상의 캐릭터로 만들면 재밌지 않을까
내 욕망들을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무지한 생각들 속에서
어쩌면 글 쓰기 또는 소설이라는 매체가 나만의 유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영화로는 대도시의 사랑법.이라고 여기에서 배우 김고은이 꼴리는 데로 행동하고 상처도 많이 받고 모 아님 도 이렇게 살아가는데 그 김고은 안쪽에 숨어있는 서러움들, 불안함, 불편함, 우울함들이 터져 나올 때 뭐라 해야 할까. 아 나도 저런 감정을 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난 냄새에 아주 민감하다.
원치 않는 냄새를 맡을때
그 냄새가 어떠한 냄새인지 굉장히 파고든다.
그래야 다음번에 피할 수 있기에
냄새, 향기 그것은 존재만으로 굉장히 많은 것들을 데려온다.
냄새의 범위가 아주 무한한 것처럼,
그 미세한 냄새를 맡을 때마다
그 당시의 기분도 같이 데려오기도 한다.
일과를 끝내고 집을 들어오기 위해
도어록을 치다 보면 현과 문 사이로 쿰쿰하고 꼬릿 한 냄새가 난다.
처음엔 조금 불쾌하지만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고기가 듬뿍 들어간 청국장이라는 걸 아는 순간
기분 좋은 냄새가 된다.
오후 5시 40분,
길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숯불에 굽은 달달한 갈비 냄새가 나를 스친다.
그럼 어디 가게인가 정신이 팔려 갈빗집을 찾다
익숙한 냄새의 족발 냄새, 그리고 노을이 지며
하나둘씩 가게 환기구에서 연기가 폴폴 난다.
그럼 분위기에 젖어 걸음이 느려질 때쯤
양옆에서 풍기는 다양한 역겨운 냄새들이 내 콧구멍을 막는다.
양심,,
엄마, 아빠, 딸 1명이 신호등을 건너려 걸어온다.
파란불 5초.
딸은 뛰어가며 5초 안에 나머지 신호등을 건넌다.
뛰어가는 딸을 보며
엄마, 아빠는 빨간불이 바뀌어도 굴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간다.
이 사회에서 양심을 지키기엔 너무 많은 시험대가 기다리고 있다.
딸의 나이 약 10살, 아직 양심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인생 난이도이다.
엄마 아빠의 나이 약 50대, 그전에 있었던 너무 많은 시험대를 지나쳐온 결과
양심을 따지기 전에 손익을 먼저 따지게 되는 사회의 나이이다.
알바를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3인 가족이 신호등 건너는 걸 봤다.
물론 그 신호등은 있으나 마나인 테스트 중인 신호등이었지만 행동하는 거에 따라 저렇게나 관점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