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휴학

by 예영

가출 1

평소와 같이 일과를 끝내고, 밤 8시 운동장에서 벤치에서 앉아 노래를 듣는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 타지에서 1년 반을 지내는 동안 21살 치고 이 정도면 많이 단단해졌지 않나 하고 우쭐해할 정도로 나 상식 밖의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시기였다.
내 스스로에게도 오구구 해주며 잘 버텨왔지만 이미 너무 에너지를 많이 써버린 탓일까, 바람에 풀이 흩날리는 소리와 이어폰 안에 들려오는 단단한 노랫소리가 내 서러움을 깨트렸다.


한번 터지자 눈물은 마를 줄을 몰랐고 양쪽 옷 소매가 축축해질 정도로 서럽게 울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가 나올 거라 믿으며 가다, 없음을 확인하고 무너지는 울음이었다.

운 지 1시간 반쯤, 많은 인파 속 동 떨어진 기분과 함께 부질없다고 느껴졌었다. 당시 우울증이 다 낫지 않았던 나는 나와 협상을 했다.
'광안리 해변가를 가보고도 그대로면 네 말대로 하자.'
무작정 부산 표를 끊고 택시를 잡아 근처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이 무지하게 떨렸었다. 부산역에 내려서 바다까지 걸어가는데, 지나가는 타인들이 모두 어색했다. 마치 나만 진짜이고 다른 사람들은 가짜인 듯한 그런 현실 감각이 떨어졌었다.

자정이 넘어가는 시각, 광안리 바닷가는 여느 때와 같이 광안대교가 단단히 자리를 잡고 건물은 번쩍번쩍 빛 나고 있었다. 꺄르륵 거리며 술래잡기하는 연인들, 금방 쓰러질 듯이 휘청거리는 사람들, 모두 나와는 다른 세계 사람들 같았다.
적당히 바다를 보다 근처에 1인 숙소를 잡아 들어갔다. 숙소에서 제공된 잠옷으로 갈아입고, 생각으로 날뛰는 머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잔잔한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 잠에 들었다.

영원할 거 같던 그 밤이 지나가고 해가 떴구나 하며 국밥집에서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프랜차이즈 카페를 들어가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서 '미드나잇 선'이라는 로맨스 영화를 봤다.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더 이상 사랑을 이어갈 수 없어서 서러웠던 건지, 영화를 핑계로 내 서러움들이 튀어나왔던 건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보고 나서 조금은 위로가 되어 돌아가는 기차를 얌전히 타고 갔었다.


가출 2
연속적으로 일어났던 상식 밖의 일들은 나를 더더욱이 날카롭고 방어막을 두껍게 만들었다. 못생긴 감정들은 부모님께 화풀이로 표현되었고 그나마 연락하던 부모님과 연락이 끊겼다. 지금 보면 나를 여기서 꺼내달라는 발악 같기도, 더 이상 사람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은 한 어린아이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용돈이 끊기자, 난 계획을 바꿨다. 방학 동안 기숙사에 남아서 돈도 벌고 공부를 하려던 내 계획은 우선 숙소비를 아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작년에 실패했던 제주도 게하 스텝 지원이 생각났고 죽어도 붙자는 절박한 마음으로 1000자가 넘는 신청서를 약 6곳에 넣었다.

3일 정도 지나자, 바로 올 수 있냐는 연락에 오늘 짐 싸고 바로 내일 도착 가능하다 연락을 보냈다.
이렇게 도착한 제주도에서는 같은 세상을 살아온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 천지였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사실 스텝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 일마저도 아침에 잠깐 방 청소 후 저녁에 파티 겸 노는 게 다였다. 지내면서는 내심 내가 다시 살고 싶어 지길, 세상에는 희망이 남아있다고 다시 믿을 계기가 되길 바라고 갔었다.


제주도에서의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이었다. 항시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내 기분과 생각을 알리지 않아야 내가 다치지 않는다고 굳게 믿어왔다,
나만 조용히 지내면 세상도 조금은 조용해질 거라고 막연히 믿었다.

그 때문일까, 항상 말을 깊게 섞지 않는 나는 자연스레 여자 스태프들 사이에서 배제되었다.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 절제하던 내 행동과 말들은 내 속을 썩혔고 어느새, 난 사소한 내 감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지금 보면 참 애썼다고 말해주고 싶다.
절대 내 기분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안 된다는 생각과 그럼에도 진짜 나를 잃고 싶지 않은 굳건한 의지 사이에서 굉장히 헤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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