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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신대 박정훈 Apr 12. 2023

자세히 보아야 예쁜 정원

Soundgarden - 정규 4집 <superunknown>

 사운드가든은 재밌는 밴드다. 자랑할 명반도 있고, '시애틀 그런지 빅4'라 불릴 만큼 음악계 입지도 탄탄한 밴드다. 사운드가든 하면 음울한 사운드에 탁월히 어울리는 크리스 코넬의 보컬이 일반적으로 떠오를 것이다. 훗날 오디오 슬레이브에서도 맹활약한 크리스 코넬은 10대 시절부터 우울증을 앓고 왔으며 불안정한 정신은 끝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갔다. 많은 락 리스너들은 개성있는 보컬 실력과 수많은 명곡들을 작곡했던 음악적 천재성을 가진 그를 지금까지 그리워한다. 그만큼 크리스코넬은 뛰어난 프론트맨으로 밴드의 얼굴이었다. 그가 메이저 씬에 이름알린 사운드가든에서도 그의 공은 몹시 크다. 하지만 사운드가든을 단순히 그 혼자만 기억에 남을 밴드로 취급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밴드다. 


 이 밴드의 앨범들을 듣다보면 재밌는 생각이 든다. 얼핏들어 헤비메탈같지 않은데 간혹 블랙사바스의 헤비메탈 요소가 들린다. 때론 정직하다 생각이 들다가도 변칙적인 기타소리와 변박 리듬에 의아해지기도 한다. '예측불허함'. 사운드가든의 음악을 들을 때 이 부분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Superunknown>은 그 매력이 가장 돋보이는 앨범이다. 그들 커리어에서 가장 다채로운 소리를 담았고, 지금도 들을 때마다 새로운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Let Me Drown'의 강렬한 기타 리프로 포문을 열고 나면 'My Wave'를 거쳐 'Fell On Black Days'가 등장한다. 음울한 사운드와 크리스 코넬의 목소리가 잘 어울리는 이 곡을 들을 때,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빠졌다는 가사가 크리스 코넬의 인생사를 알고 들으면 절규처럼 들린다. 패배적인 그런지 장르적 느낌을 유지하는 한편, 힘있는 드럼과 불안한듯 조화롭게 이어지는 기타 솔로가 일품이다. 본 앨범을 듣는다면 우선 크리스 코넬의 보컬에 집중해 듣고, 두번째 정주행 시 기타 소리에 집중해 듣길 권하는데 킴 타일의 기타가 재밌기 때문이다. 리드 기타가 주인공 격인 다른 밴드들의 기타리스트와는 다르다. 주목을 독차지하려 애쓰기보다는 보컬 뒤에서 자신만의 이스터에그를 숨겨놓는 면모가 있다. 이를 하나씩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앨범의 가장 인기있는 트랙 'Black Hole Sun'과 'Spoonman'은 나란히 붙어있다. 그래서 이 구간을 들을 때면 약 10분 간 즐거움이 이어진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앨범을 수 차례 다시 돌려듣게 됐고, 'Black Hole Sun'을 들을 수록 곡의 완성도에 감탄하게 된다. 비교적 조용한 사이키델릭 사운드로 시작하여 점차 헤비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때 전환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언제부터 변했는지 집중하지 않으면 놓쳐버릴 정도다. 긴장감을 형성하게 하는 구성, 퀄리티에 정점을 찍어주는 마감 요소들(백보컬, 마지막에 페이드 아웃되는 소리 등). 이 앨범을 벗어나 사운드가든 커리어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곡이 아닐까 싶다. 'Spoonman'은 시작부터 묵직한 하드락 사운드가 압권이다. 그렇게 정직한 하드락으로 가나 싶더니 2분대에 변화를 준다. 베이스로 시작해 치고 올라오는 기타 솔로, 정체불명의 잘가닥거리는 소리(아마 숟가락으로 컵 두들기는 소리같다) 그렇게 1분 30초 간 혼돈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다시 코러스로 돌아와 한꺼번에 터트린다. 


 두번째로 들을 때 기타에 집중하라 했다. 그렇다면 만약 세번째로 듣는 날이 온다면 이번에 드럼 박자에 집중해보길 추천한다. 맷 캐머런의 드럼은 곡 중간에 변박을 일삼는다. 수시로 변하는 박자에 맞춰 노래부르는 크리스 코넬의 보컬이 신기할 정도다. 'Limo Wreck'과 'The Day I Tried To Love'는 박자의 변환이 정말 자유롭게 나타나 듣는 내내 흥미롭다. 두 곡이 눈에 띄어서 그렇지 앨범의 많은 곡들이 변박을 자유자재로 일삼는다. 


 어느덧 앨범의 후반부에 이르렀다. 1분 30초 가량 짧고 빠르게 달리는 'Kickstand'는 청자에게 잠시 쉬어갈 시간을 부여한다. 그간의 곡들이 다채로웠기에 가장 빠르면서 단순한 이 곡은 쉬어가는 구간이 되고 말았다. 다시 'Fresh Tendrils'로 슬슬 시동을 건다. 그렇게 걸린 시동은 '4th of July'에서 안정화된다. 미드 템포의 묵직하며 음울한 감성의 본 곡은 'Kickstand' 이후 나오는 트랙 중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데 헤비한 이 곡 다음에 나오는 'Half'는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뭐랄까. 보너스트랙으로 나와야 할 노래인데 정규에 수록되어버린 느낌이다. 여하튼 앨범의 끝이 다가왔음을 직감적으로 일깨우는 효과가 있다. 그렇게 맥이 풀린 채 마지막 트랙 'Like Suicide'를 들으면 예측불허하게 흘러온 앨범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리가고 저리가고 했지만 그게 그런대로 듣기 좋았다. <Superunknown>은 어떠했는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다. 


 그런지 감성을 유지하는 한에서 다채로운 장르적 사운드를 결합했다. 이 앨범 하나에서 헤비메탈, 하드락, 사이키델릭, 펑크와 같은 다양한 장르의 소리가 들린다. 마치 일부러 유사한 소리로 통일되는 것을 거부한 듯 어느 순간마다 어긋남을 넣어놨다. 이것은 앨범을 듣는 내내 지루함을 덜어냈고 집중을 유지하게 해주는 요소로 작동했다. 중구난방은 아니고, 컨셉앨범같은 일체감은 더더욱 아니고, 그 사이 절묘한 통일감이 느껴지는 매력적인 앨범이다.


 비단 <Superunknown>뿐 아니라 사운드가든의 음악은 친절히 자극적이고 후크한 사운드를 귀에 꽂아주진 않는다. 동시대 활동했던 밴드들같은 음악을 기대하고 듣다가는 처음에 실망할 지 모른다. 하지만 비밀스레 숨겨졌던 통로로 진입해 그 속에 담긴 재미난 요소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다 보면 사운드가든이란 미로로 채워진 정원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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