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은 턴 한 번이 판을 뒤집는다

게임도 소송도 운빨이 중요하다

by 지세훈 변호사

매치-3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이런 순간이 온다. 도무지 판이 안 풀리던 중에 뜻밖의 수 하나로 판 전체가 터져 나가면서 상황이 단번에 뒤집히는 때. 그 순간은 손맛과 쾌감의 문제를 넘어선다. 내가 의도한 수와 실제 결과 사이에 미묘한 간극이 있고, 거기에 운이 들어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법정 싸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증거를 모으고, 법리를 다듬어도 결국은 의도하지 않은 변수 하나가 재판의 흐름을 확 뒤집는 경우가 있다. 사건을 오래 하다 보면, 실력이 아닌 ‘운’의 몫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운이라는 건 대체로 사건의 초반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소송을 시작할 때는 모두가 논리와 증거를 앞세운다. 누가 더 정교하게 준비했는지, 누가 더 빠르게 대응하는지가 중요해 보인다. 그런데 일정 시점이 지나면 이상하게도 이 힘겨루기가 ‘예상 밖의 턴’에 의해 깨진다. 상대방의 담당변호사가 교체되면서 주장이 전환되거나, 재판부의 심증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거나, 아주 사소한 증거 하나가 핵심 논점의 균형을 바꾸는 식이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한 가지다. ‘이건 내 계산에 없던 수였어.’ 매치-3 게임으로 치자면 애써 모아둔 콤보가 아니라 구석에 있던 보석 하나가 우연히 떨어져 연쇄 폭발을 일으킨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걸 단순히 ‘운이 나빴다’거나 ‘운이 좋았다’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문제는 소송이 한 번의 턴으로 끝나는 게임이 아니라는 데 있다. 운은 한순간 판을 뒤집을 수 있지만, 그것이 최종 승패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흐름을 바꾸는 건 확실하다. 흐름이 한 번 바뀌면 그다음 전략은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들은 이걸 종종 간과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호사의 능력으로 흐름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이 변수는 의도치 않은 곳에서 자주 등장한다. 예컨대 증인신문 과정에서 상대방이 별 의도 없이 던진 한마디가 재판부의 주의를 끌어 흐름이 변하는 경우가 있다. 제출한 증거 중 부차적인 것으로만 생각했던 부분이 갑자기 쟁점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조정기일에서 나온 한마디가 사건을 통째로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경우도 있다. 게임으로 치면 내가 애써 만든 콤보가 아니라, 떨어지는 조각 하나가 뜻밖의 연쇄반응을 만든 꼴이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면 누구든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잘 짜인 전략도 결국 변수를 이길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략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운이 작용할 여지가 있다는 걸 인정할수록 전략은 더 단단해진다. 매치-3 게임에서도 운이 좋아야 큰 콤보가 터지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수를 두는 사람에게 행운이 오는 건 아니다. 행운은 잘 설계된 판 위에 떨어질 때 힘을 발휘한다. 소송도 마찬가지다. 전략적으로 사건을 잘 세팅해두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나더라도 흐름을 다시 잡아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결국 운은 전략을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전략 위에 얹혔을 때는 오히려 강력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아무 준비 없이 ‘운이 따라주길’ 바라는 태도는 위험하다. 그건 게임으로 치면 초반부터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수나 두는 것과 같다. 설령 운이 한 번쯤 터져서 판을 뒤집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런 행운은 오래가지 않는다. 실제 재판에서도 이런 ‘한방’에 기대는 사람은 사건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한다. 운으로 얻은 우세는 쉽게 잃고, 흐름이 반대로 기울면 대응할 체력이 남아 있지 않다. 실력 없이 얻은 우연은 쉽게 무너진다. 운이 개입하는 현실을 인정하되, 그것에 기대지는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운이 작용하는 방식이 단순히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사건에서는 초반에 운이 나쁘게 작용하는 것이 오히려 후반에 유리한 흐름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불리한 기일이 쌓이면서 상대방이 자만하고, 방심한 틈에 결정적 증거가 터지는 식이다. 반대로 초반에 운 좋게 흐름을 잡았다가 마지막 기일에서 뜻밖의 변수를 맞아 판 전체가 뒤집히는 경우도 많다. 재판을 오래 다뤄본 사람이라면 이런 반전을 수없이 목격한다. 그래서 다들 소송은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한다.


이혼 소송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감정이 얽힌 사건일수록 운의 영향력이 커진다. 상대방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다 우연히 불리한 발언을 해버리거나, 예측하지 못한 증거를 스스로 내놓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명백히 유리한 상황이었는데도 재판부가 의외의 태도를 보이는 순간 흐름이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이럴 때 사람들은 억울함을 느낀다. ‘이렇게까지 준비했는데, 왜 저런 우연한 말 한마디에 판이 흔들리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억울함을 겪을수록 결국 깨닫게 된다. 소송은 100% 통제 가능한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운이 개입하는 구조를 인정하는 것은 패배주의와는 다르다. 오히려 이 인식은 마음을 단단하게 만든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을 구분하는 태도는 소송에서 의외로 큰 힘을 발휘한다. 매치-3 게임에서 운이 따라오지 않을 때 괜히 조급하게 손을 흔들다 턴을 낭비하는 것처럼, 소송에서도 운을 내 의지로 바꾸려 하다 사건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운의 작용을 인정하고, 흐름을 지켜보며,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훨씬 유연하게 대응한다.


어찌보면 이것은 전략이라기보다 태도의 문제다. 어떤 사건은 정말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판이 터지고, 어떤 사건은 끝까지 터지지 않는데, 억지로 무엇인가를 만들려 하면 사건이 삐걱거리게 된다. 운이 들어오는 순간을 억지로 당기거나 밀어붙일 수는 없다. 다만 그때가 왔을 때 그것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전략은 바로 거기에 쓰인다. 운이 오는 순간을 버티고 기다리며, 그것을 내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두는 것.


재판에서 운이 개입한다는 걸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사건 전부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겸손에 가깝다. ‘내가 다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더 정교하고 단단한 전략이 만들어진다. 판이 터지는 건 언제나 완벽한 계산 위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때로는 우연의 자리에서, 한 번의 운 좋은 턴으로 흐름이 바뀐다. 그래서 소송은 강한 자가 아니라 끝까지 태도를 잃지 않는 자가 이긴다. 운이 들어오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그걸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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