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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비행기

by 지세훈 변호사

종이비행기는 손끝에서 가볍게 날아간다. 접힌 종이는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공중에 떠오르는 순간만큼은 마치 그 작은 비행기가 끝없이 하늘을 가를 것처럼 느껴진다. 처음엔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비행기는 점차 힘을 잃고 아래로 가라앉는다. 종이는 더 이상 공기를 가르지 못하고, 천천히 땅으로 떨어지며 멈춘다. 우리는 그 순간, 이 비행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혼에 이르는 혼인관계는 마치 종이비행기의 비행을 보는 것과 같다.


결혼 초, 부부는 마치 자유롭고 가벼운 종이비행기를 함께 띄우는 기분으로 인생을 시작한다. 서로의 손에 의해 접히고 만들어진 비행기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란히 날아오른다. 처음에는 그 속도가 충분하고, 하늘은 넓어만 보인다. 신뢰와 설렘은 자연스레 바람을 타고, 부부관계는 아무런 장애 없이 흘러간다. 그 가벼움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날개가 되어주었고, 삶의 여정은 날듯 가벼워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종이비행기의 궤도는 서서히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모를 정도의 미세한 기울어짐이었지만, 점점 균형은 무너지고, 고도는 낮아지며 비행기는 결국 땅으로 내려앉는다. 부부관계 역시 그처럼, 처음의 추진력을 잃어간다. 마음의 방향이 엇갈리고, 일상의 균열이 반복되면서 관계는 더 이상 공중에 머물 수 없게 된다. 예전처럼 높이 날고 싶지만, 그 비행은 이미 끝나 있다.


이혼 소송은 그 비행의 종착지를 인정하는 절차다. 한때는 끊임없이 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종이비행기가 더 이상 날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많은 부부가 그 종이비행기를 다시 띄우려 하지만, 종이는 이미 구겨졌고, 바람을 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관계의 경계는 무뎌졌고, 더는 공중에 머무를 수 있는 가벼움도, 여유도 남아 있지 않다.


변호사로서 내가 하는 일은, 그 멈춰버린 종이비행기를 손에 쥐고 애써 미련을 두려는 사람에게 그 비행이 끝났다는 것을 조용히 알려주고 새로운 시작을 도와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종이를 펴 다시 접으면 예전처럼 날 수 있을 거라 믿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미 여러 번 주름이 진 종이는, 다시는 처음처럼 곧고 팽팽하게 날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그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종이비행기는 애초에 잠시 나는 것이 전부다. 언젠가는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날고 있는 그 순간엔 영원히 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종이비행기의 아이러니다. 혼인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함께 걷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관계는 더 오래 지속되리라 믿지만, 한 번 마음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추락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온다.


"종이비행기는 이미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제 새로운 비행기와 함께 다음 비행을 준비할 때입니다."


비행을 끝낸 종이비행기를 내려놓는 일이 쉬운 사람은 없다. 손에 익은 모양, 익숙한 궤도, 한때는 자랑스러웠던 높이. 그 모든 것들을 놓는다는 건 결국, 함께한 시간 전체를 인정하고 정리한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정리된 자리에서야 비로소, 새로운 궤도와 바람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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